단독[아시아경제 장세희 기자, 조성필 기자] 경찰이 수사권 조정 이후 가속화된 수사 부서 기피 현상을 막기 위해 추진한 사건 처리 1건당 2만원의 수당 지급이 무산됐다. 작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시행 뒤 경찰의 업무 부담이 가중된 가운데, 사건 처리도 더욱 느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만원 수당 지급' 무산= 3일 경찰청, 기획재정부, 인사혁신처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경찰이 지난해 12월 추진했던 '고소·고발 사건 1건당 처리 시 2만원 수당 지급'은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수사 경찰은 1인 기준으로 한 달 최대 4만원을 받는다.
정부 관계자는 "경제가 많이 어려워 장·차관들은 보수를 반납했고, 4급 이상 공무원들의 봉급은 동결했다"며 "전체적으로 고통 분담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데 경찰이라는 특정 직종의 수당을 올리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경찰공무원 보수가 공안직 공무원 수준으로 상향 조정된 것도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수당 인상은 최저임금에 미달해 일하고 있던 사람들만 조정한 것 외에는 특이사항이 없다고 덧붙였다.
경찰청은 향후 재추진하는 것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결국 이번에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1년에 한 번 개정이 가능한 만큼 다시 검토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월 사건 수사 예산은 소폭 증액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월 사건 수사비는 619억원으로 전년(572억원)보다 47억원 늘었다. 이에 따라 월 사건 수사비는 당초 13만7000원에서 14만9000원으로 늘게 된다. 월 사건 수사비는 수사과 경찰뿐 아닌 형사, 여성청소년과 경찰 등 수사 활동을 하는 모든 경찰에게 배정된다. 교통비, 식사비 등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영수증을 지참해야 하는 방식이다.
◆수사 경찰 업무 과중 우려= 경찰청은 사건 처리 속도를 높이고 기피 부서 이미지를 탈피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마저도 어렵게 됐다는 게 내부 평가다.
국가수사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사건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21년 수사관 1인당 사건 처리 건수는 평균 99.1건을 기록했다. 서울 일선서의 수사 경찰은 한 달 최소 10건 이상의 사건을 담당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수사 경찰은 "사건이 몰릴 때는 한 달에 30건도 몰린다"며 "대규모 사기 사건 같은 경우에는 이해관계자들이 많아 한 사건을 마치는데 한 달 이상 걸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6개 범죄를 제외한 모든 범죄 수사권을 갖게 되면서 업무 부담은 크게 증가했다. 경찰 1명당 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20년 55.6일에서 2021년 64.2일로 늘었다. 작년 10월 기준으로는 66.7일로 길어졌다. 최근에는 시민단체들의 고소·고발 접수도 느는 추세다. 다른 수사 경찰은 "업무를 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구조"라며 "사건 처리 수당도 무산됐고, 수사과 기피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력 증원 없이는 미봉책= 경찰 업무 과부하는 국민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김모씨는 지난달 자신이 다니던 회사 대표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지만 일주일 동안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4월 사기죄로 고소당한 최모씨는 유선 조사를 한 번 마친 후 피해자와 합의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어떠한 결과 통보도 받지 못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수사 권한과 범위가 매우 넓어졌지만, 인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며 "단순히 수당을 올리고 평가 방식을 바꾸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인력을 충원해 사건 처리가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경찰에 일차적 수사 종결권을 부여해 모든 책임이 경찰에게 돌아가는 구조"라며 "책임을 가볍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보니 수사 부서 기피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사를 하는 데도 비용이 충분치 못한 문제도 있다"며 "검찰과 경찰의 중간단계가 아닌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같은 전문 수사기관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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