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건물 청소하는 분들이 주로 새벽 첫차를 타시는데, 타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2대가 함께 출발한다."
지난달 27일 오전 3시40분.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6411번 버스 차고지는 첫차 운행 준비에 한창이다. 버스 기사 김우석씨(63)와 김정호씨(54)는 이날 첫차 버스 담당이다. 차고지 사무실에서 익숙한 모습으로 운행 준비에 나섰다. 버스 기사는 운행 전에 음주운전 측정을 하고, 이상이 없어야 운행이 가능하다. 승객 편의를 위한 돈통 준비도 기본 중 기본이다.
새벽 첫 버스는 한 대가 운행할 것 같지만 6411번 버스는 두 대가 동시에 운행하는 게 특징이다.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해 강남구 개포동까지 왕복하는 6411번은 서울을 운행하는 수많은 버스 중 하나가 아니다. 영화로도 나왔을 정도로 유명한 버스다.
그 사연은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2012년 당 대표 수락 연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이다."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6411번 승객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다." 정치인 노회찬의 자성은 우리 정치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되묻고 있다. 그렇게 6411번 버스는 서민 삶을 대변하는 상징이 됐다.
버스 운전 경력 12년의 김우석씨는 이곳에서 일한 지 3년이 됐다고 한다. 매일 구로와 강남을 오가며 건물 청소하는 분들을 태워 목적지에 당도하게 하는 게 그의 일과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은 아침 7~8시가 가장 바쁜 출근 시간이겠지만, 멀리 떨어진 강남 빌딩으로 향하는 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6411번 버스는 새벽 4~5시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버스가 첫 번째 정류장에 도착하자 3~4명의 승객이 올라탔다. 강남에서 청소 일을 하는 방모씨(69)는 일부러 2~3정거장을 걸어와 노선의 시작 지점에서 버스를 탄다. 방씨는 "1시간 정도 서서 가는 게 힘들어서 차고지 정류장까지 걸어온다"면서 "처음엔 새벽길 걷는 게 무서웠는데 적응되니 할만하다"고 말했다.
2022년 12월 27일 오전 3시40분께 서울 구로구 거리공원에서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차고지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날 새벽 기온 영하 4도를 기록했다. 사진=윤슬기 기자 seul97@
원본보기 아이콘방씨가 매일 새벽 버스를 타는 이유는 소박했다. "내 용돈 내가 벌어 쓰고, 손주들 용돈 주고…나는 그게 좋아." 그의 웃음은 새벽 생활의 고단함을 잊게 했다. 6411번 버스 승객들은 매일 같은 시간 승차해서 비슷한 공간(강남 일대)에 내리기 때문에 버스가 맺어준 이웃사촌이다.
굳이 하는 일과 목적지를 묻지 않아도 눈빛과 눈빛으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한다. 매일 만나던 버스의 이웃이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을 때는 혹시 건강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걱정해주는 관계. 팍팍한 서울 인심을 고려할 때 타인에 관한 그러한 관심은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6411번 버스는 매일 그렇게 아직은 이 사회가 살아갈 만한 공간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새벽을 열어간다.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나 승객이나 새벽 생활은 삶의 일부가 돼 버렸다. 김우석씨는 "(새벽 버스를 몰기 위해) 출근하려면 3시에는 나와야 한다. 요즘은 날씨도 쌀쌀해서 새벽 출근이 힘들긴 하지만 본업이니까 괜찮다(웃음)"고 말했다.
방씨도 "별로 힘들지 않다. 일찍 출근해서 일하는 것 자체가 삶"이라고 전했다. 20년 넘게 6411번 첫차를 타고 출근했다는 이기술(68)씨 역시 "습관이 돼서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6411번 버스 승객들이 남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는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에 건물 청소를 마무리하기 위함이다. 화장실과 사무실, 엘리베이터와 복도 등 회사 곳곳의 청결을 유지하는 게 이들의 임무다. 강남구 도곡동의 한 회사에서 청소 일을 하는 최모씨(64)는 "청소라는 게 열심히 해도 티가 잘 안 나는데, 안 하면 확 티가 난다"고 말했다.
방씨는 오전 5시3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방씨는 "직원들도 내가 청소하면 불편해하고, 나도 직원들이 있으면 일하기 쉽지 않아서 일찍 출근해 일한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가 업무 시간이다. 최씨는 6411번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지난 후에 하차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최씨는 가장 먼저 13층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는 청소용 쓰레기통으로 쓰는 파란 고무통을 챙겨 각 칸의 휴지통을 비우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최씨가 맡은 청소 구역은 13층 전체와 10층 남녀 화장실이다.
최씨는 "정확한 평수는 모르지만 한 100평 정도 되는 것 같다"면서 "재택이나 휴가 중인 직원들 제외하면 매일 출근하는 직원은 50여명 정도 된다"고 전했다.
일하는 손이 둔해질까 최씨는 맨손으로 먼지를 닦았다. 음료와 음식물쓰레기가 뒤섞인 쓰레기에서는 악취가 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최씨는 쓸고, 닦고, 비우고, 채우는 일을 반복했다.
13층에서 개수대 3곳, 화장실이 딸린 사장실 2곳을 청소하고 70개가 넘는 직원들의 개인 휴지통을 비웠다. 13층과 10층의 남녀 화장실 세면대와 변기를 일일이 손걸레로 닦고, 대걸레로 바닥을 청소했다. 어지럽게 놓여 있던 휴지통은 깨끗하게 비워졌고, 사무실도 말끔하게 치워졌다.
최씨의 아침 업무는 7시40분께 마무리됐다. 청소를 마치자 사무실 직원들이 하나둘 출근을 시작했다. 최씨가 쉬는 시간을 갖기 위해 휴게실로 돌아왔을 때에서야 창문 너머로 아침 햇빛이 드리웠다. 서민들의 새해 소망은 언제나 그렇듯 건강이다. 최씨의 새해 소망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것은 다른 게 없다. 자식과 손주들이 건강한 것, 그것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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