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가전서 일하면 2000만원 격려금?'…고개드는 삼성전자 '그룹화'

사업부 간 처우 차별화
그룹 동질감 깨지며 직원들 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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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예주 기자] 신입사원 연봉 차별화, 사내 채용공고 등 연말에 터져 나온 일련의 뉴스에 삼성전자 가 술렁이고 있다. 모든 직원이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 같지 않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 사업 부문별 실적과 그에 따른 보수, 대우 등의 차이가 커지면서 일각에선 회사가 삼성반도체, 삼성휴대폰, 삼성가전 등 사업별로 쪼개지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삼성전자 사내 게시판에 올라 온 내부 채용공고와 이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이 이 같은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사내게시판에 내부 직원이 생활가전사업부로 이동하면 일시금 2000만원을 주고 원하면 3년 뒤엔 원래 일하던 곳으로 돌려보내준다는 채용 공고를 냈다. 또 3년 동안 목표달성장려금(TAI·옛 PI)와 초과이익성과금(OPI·옛 PS) 등을 현 사업부와 생활가전사업부에서 받을 돈 가운데 많은 쪽을 택할 수 있게 했다.

삼성전자는 6개월마다 TAI, 1년에 한 번 OPI를 지급한다. 실적이 좋을 때는 TAI와 OPI를 연봉보다 더 받는 경우도 있다. 같은 10년차 직원이 실적평가와 소속에 따라 자동차 한 대 값을 더 받고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성과급 지급 부서 선택권은 의미가 크다.


기존 생활가전사업부 직원들은 반발했다. 한 직원은 "이번 공고는 생활가전사업부는 모두가 꺼리는 곳이란 공개 낙인"이라며 "열심히 일하던 구성원들이 허탈해 한다"고 토로했다. 사실 더 심각한 문제는 파격 조건을 내걸어도 타 부문 직원들이 시큰둥했다는 점이다. '일시금 2000만원 지급'에 솔깃하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그래도 생활가전엔 안 간다"라는 반응을 내비쳤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냉장고·세탁기·식기세척기 등을 생산하는 생활가전사업부 인력 충원 난항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다른 사업부와 비교해 실적이 낮아 성과급은 적지만 일은 많다. 생활가전사업부 제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광주사업장은 직원들 사이에선 '광주전자'라는 이름으로 불릴 지경이다. 삼성전자가 아닌 다른 회사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다는 의미로 붙여진 별명이다.

회사가 실적 우수 부문만 선호하는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1월 DS 부문이 대졸 초임을 150만원 인상한 것이다. 현재 DS 부문의 대졸 초봉은 5300만원, 다른 곳은 5150만원이다. 과거에도 사업 부문별로 보너스나 일부 복지에 차등을 두었지만, 초임이 달라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사업부 2~3년차 선배보다 DS 부문 신입사원 연봉이 더 높아진 것이다. DS부문은 연내 추가 보상금도 계획했다가 다른 사업 부문의 반발에 부딪혀 추진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부문별·직군별로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또한 반도체, 휴대폰, TV 등 부분별 회계실적을 집계하고 발표하는 중이다. 투자 등 지출도 각 사업의 팀장인 사장이 독립적으로 결정해왔다. 회사는 채용, 인사, 회계, 지출 등을 같이 하는 조직이다. 삼성전자 각 사업부는 이미 사실상 독립회사였다. 최후까지 삼성전자 조직원들을 하나로 묶고 있었던 것이 공채였다. 공채로 들어온 신입사원은 모두 삼성전자 가족으로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가족 단위가 삼성전자 전체에서 사업부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다. 사내 사업부 간 공개채용, 대졸 초임 차등화는 삼성전자는 하나의 회사란 심리적 동질감을 깨뜨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하나의 회사란 정체성을 버리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삼성전자 수뇌부는 사업별 회사 분리에 대한 고민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주요 고객이 원하기 때문이다. 최지성 삼성전자 전 부회장은 재직 당시 "삼성전자가 종합가전회사이기 때문에 고객관리에 고충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핵심 전자 부품과 휴대폰, TV 등 주요 완제품을 모두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종합업체다. 종합업체이기 때문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종합업체라는 점이 사업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애플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최대 고객인 동시에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의 최대 경쟁자다. 애플 입장에선 삼성전자에서 핵심부품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받아 제품을 만들어서 삼성 스마트폰과 싸움을 해야 한다. 삼성 부품을 살 때 마음이 편하기 힘들다. 애플뿐 아니라 전세계 주요 전자업체 대부분이 삼성의 고객이자 경쟁자다. 사업부 분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이미 사업을 분리해 회사를 만든 경험도 있다. 삼성전자는 2012년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을 떼어내 삼성디스플레이를 만들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실제 분사하지 않아도 사업부 간 경쟁, 긴장, 갈등이 있다는 것을 외부에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고객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부 실적 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는 평가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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