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만 신난 무의미한 경기"…월드컵 3·4위전 논란

외신 "더 많은 중계권료와 후원금 챙기려고 열어"
모로코 감독 "최악의 경기…정신적으로도 힘들다"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왈리드 라크라키 감독. 사진=EPA· 연합뉴스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왈리드 라크라키 감독. 사진=EPA·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2022 카타르월드컵 결승 진출에 실패한 모로코 축구대표팀의 왈리드 라크라키(47) 감독이 3·4위전 승리를 '위로상'에 비유하며 결승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라크라키 감독은 16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치르는 3·4위전에 대해 "부비상(booby prize)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부비(booby)는 '멍청이'라는 뜻으로, 부비상이란 스포츠나 퀴즈 대회 등에서 꼴찌나 하위권 팀에게 완주를 치하하며 앞으로 분발하라는 격려와 위로의 뜻을 담아 장난스럽게 주는 상이다. 또 때로는 모두에게 전달하는 '참가상'의 의미도 있다.

라크라키 감독은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다"라면서도 "3·4위전 승리가 중요하고, 4위보다는 3위가 낫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내게는 우리가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또 "이 경기(3·4위전)는 우리가 맞이하는 '최악의 경기'일 것이다.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경기를 할 수 있어 기쁘다"며 애써 현 상황을 합리화했다.


또한 감독은 모로코팀이 감정에 휩쓸려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그는 "우리는 처음 4강전을 펼쳐 감정이 고조됐다"며 "준결승에서 패배하고 이틀만에 3·4위전을 치러야 하는 피로 때문에 꽤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더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머리를 비우고 고개를 높이 들고 이 경기에 임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모로코와 크로아티아는 지난달 23일 열린 F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만났었다. 당시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끝났다. 이에 라크라키 감독은 "첫 경기에서 크로아티아를 상대했기 때문에 좋은 마무리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중동국가로는 월드컵 사상 최초로 4강에 올라 돌풍을 일으켰지만 준결승전에서 프랑스에 0-2로 패했다. 크로아티아는 아르헨티나에 패해 3·4위전을 치르게 됐다.


3·4위전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도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는 16일 "3·4위전은 어떤 선수도 뛰고 싶지 않고, 끝나면 일부 팬들만 기억하는 무의미한 국제 경기 중 하나"라고 비꼬았다. 이 신문은 금·은·동메달을 수여해 3위가 꼭 필요한 올림픽과는 달리, 토너먼트의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것이 중요한 월드컵에서는 3·4위전의 당위성이 약해진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3·4위전을 여는 이유는 "FIFA가 더 많은 후원금과 중계료를 챙기기 위해서"라고 비판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었던 루이 판할 감독은 당시 브라질과의 3·4위전을 앞두고 "나는 이 경기가 열려서는 안 된다고 지난 10년 동안 이야기해왔다"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네덜란드는 브라질을 3-0으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라크라키 감독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로코의 자카리야 아부할랄(22·툴루즈) 선수는 3·4위전에 대해 "아프리카 사상 최초로 세계 3위로 대회를 마칠 기회이므로 의미 있는 경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로코와 크로아티아의 3·4위 결정전은 18일 0시(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