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송승윤 기자] "밀가루에 계란까지…인건비도 안 나오게 생겼어요."
14일 오후 1시께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계란빵 노점상. 오후까지 영하권인 한파 속에서도 노점상 주인 김봉희씨(57·가명)는 부지런히 계란빵을 구워냈다. 고소한 냄새가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으면서 손님은 계속 몰렸다. 그러나 김씨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최근 밀가루 가격 상승에 이어 계란 가격까지 오름세를 보이는 탓이다.
하루에 한 통 쓰는 LPG 가스도 가격이 올라 4만원에서 5만원이 됐고, 밀가루 역시 40% 가까이 비싸진데다가 계란 한 판이 7000원에 달하면서 1개 1000원에 계란빵을 팔면 인건비도 남지 않게 됐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올해 초 붕어빵 가격을 올린 탓에 손님이 떨어질까 봐 계란빵은 가격을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면서 "작년과 비교해 유동 인구가 많아져 장사는 훨씬 잘 되는데 마진은 오히려 더 떨어졌다. 이런 적은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토스트 장사를 하는 주영식씨(48·가명)도 비슷한 상황이다. 초등학교 근처라 다른 곳보다 싸게 토스트를 파는데 가격 인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주씨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꾸준히 계란 토스트를 1개 2000원에 팔았는데 계란값과 버터 등이 오른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마진이 남지 않는다"면서 "새해부터 모든 메뉴를 최소 500원씩 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류 인플루엔자(AI)의 확산으로 계란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계란이 주재료인 토스트나 계란빵, 분식 등을 파는 영세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연초부터 밀가루와 조미료, 유제품 등 재료 가격이 줄줄이 올랐는데 계란까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외식업계도 상황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 카스텔라 등 빵을 파는 베이커리 카페나 디저트 카페 운영 업주들 역시 한숨이 늘었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교적 가격이 싼 구매처 공유도 활발히 이뤄진다. 계란이 들어가는 메뉴를 당분간 중단하겠다는 경우도 생겨났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계란 한 판(특란 30개)의 전국 평균 소비자 가격은 6715원이다. 1년 전인 6226원보다 7% 이상 비싸졌고, 평년(5547원)보다는 21% 상승한 수준이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7000원을 넘어설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농식품부는 계란의 소비자가격이 한판 기준 7000원을 웃돌게 되면 신선란 수입도 검토할 방침이다.
전국 가금농장에서 AI 감염이 확산하면서 수급 불안 심리가 커진 것이 계란값을 끌어올린 가장 큰 이유로 분석된다. 사료 가격 상승도 한몫했다. 계란 가격이 폭등하면 외식업계뿐만 아니라 관련 제품의 가격 인상과 전반적인 물가 상승까지 이어질 수 있다. 반면 아직까진 이 같은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부는 AI로 인한 산란계 살처분 비율이 높지 않아 계란 수급은 큰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생산량도 증가세를 보이는 데다가 과거와 비교해 질병이 계란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일시적인 상승 이후 계란 가격도 서서히 안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올해 AI는 지난 10월 19일 경북 예천군의 한 가금농장에서 처음 발생했다. 이후 지난 9일 기준 전국적으로 37건의 확진 및 의심 사례가 나왔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올해 첫 발생 시기가 지난해 대비 3주 정도 빠르고, 여러 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특성상 지난해보다 위험도가 더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오리 폐사율이 높으며 전파력과 바이러스의 병원성도 강한 것으로 분석돼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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