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노경조 기자] 내년 표준주택 공시가격과 표준지 공시지가가 각각 5.95%, 5.92% 내린다. 공시가격 변동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정부가 집값 하락세와 어려운 경제 여건 등을 감안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반영률)을 2020년 수준으로 하향 조정한 결과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세 부담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시가격은 부동산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증여세와 건강보험료, 개발부담금 등 60개 분야에서 기준 지표로 활용된다.
국토교통부는 2023년 1월 1일 기준으로 조사·산정한 표준주택·표준지 공시가격(안)에 대해 다음 달 2일까지 소유자 열람과 의견 청취 절차를 진행한다고 14일 밝혔다. 표준주택은 전국 414만가구 중 25만가구를, 표준지는 전국 3502만필지 중 56만필지를 대상으로 한다.
우선 전국 표준주택 공시가격 변동률은 -5.95%로 올해(7.34%)보다 13.29%포인트(p) 감소했다. 이는 2006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2009년(-1.98%)에 이어 두 번째 마이너스 변동률이자 최대 하락률이다.
지역별로도 17개 시·도 모두 공시가격이 하락했다. 특히 올해 10% 넘게 상승한 서울의 변동률은 내년 -8.55%로 전국 평균보다 감소율이 높았다. 이어 경기(-5.41%), 제주(-5.13%), 울산(-4.98%), 대전(-4.84%) 등의 순이었다. 가장 낙폭이 작은 곳은 전남(-2.98%)이었다.
서울에서는 강남구가 -10.68%로 가장 많이 내린 것으로 집계됐다. 서초구(-10.58%)와 송파구(-9.89%), 용산구(-9.84%), 마포구(-9.64%), 강동구(-9.46%), 동작구(-9.38%), 광진구(-8.82%), 종로구(-8.71%) 등이 서울 평균 하락률을 넘어섰다.
공시가격 구간별로는 전체 표준주택의 약 98.2%가 재산세 특례세율을 적용받는 9억원 이하로 조사됐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공시가격 9억원 이하 1가구 1주택자 세율을 과표구간별로 0.05%p 인하하고 있다. 종부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11억원 이하 주택 비율은 98.8%로 집계됐다.
현실화율은 2020년(53.6%) 수준인 53.5%로 낮아졌다.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1위를 기록 중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용산구 한남동 주택 공시가격은 내년 280억3000만원으로, 올해(311억원)보다 9.87%가량 떨어졌다.
내년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도 5.92% 하락해 표준주택과 마찬가지로 역대 두 번째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했다. 올해(10.17%)보다 16.09%p 감소한 수치다.
시·도별로는 경남(-7.12%), 제주(-7.09%), 경북(-6.85%), 충남(-6.73%), 울산(-6.63%) 등의 순으로 감소율이 크게 나타났다. 올해 11.21% 오른 서울의 내년 공시지가 변동률은 -5.86%로 전국 평균보다 하락률이 낮았다.
이용 상황별로는 임야가 -6.61%로 가장 많이 떨어졌고, 이어 농경지(-6.13%), 주거(-5.90%), 공업(-5.89%) 순으로 하락했다.
표준지 공시지가 현실화율은 65.4%로 조정됐다. 전국에서 가장 비싼 표준지인 서울 중구 명동 네이처리퍼블릭은 20년째 1위 자리를 지켰다. 다만 ㎡당 공시지가는 올해(1억8900만원)보다 약 7.88% 내린 1억7410만원이다.
이번 공시가격 현실화율 하향 조정으로 국민들은 세 부담을 덜게 됐다. 다만 단기적인 주택 거래 활성화와 가격 상승 반전을 이뤄내기에는 제한적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정부는 내년 재산세 부과에 있어 올해 1주택자 공정시장가액비율 인하 기조를 유지(45%)하면서 주택 가격 하락에 따른 공시가격 하락 효과 등을 반영해 추가로 인하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인하율은 내년 4월께 확정될 예정이다.
국회에서는 종부세 기본공제 금액을 1주택자 현행 11억원→12억원, 다주택자 현행 6억원→9억원으로 높이거나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하 소유자에 대해 중과를 폐지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내년은 1%대의 저조한 경제성장률 전망과 물가에 연동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고, 아파트 입주 물량(30만249가구)은 올해보다 5만가구 순증해 수요 부재를 단기에 타개하기 쉽지 않다"며 "정부의 움직임은 몇 년간 가파르게 상승한 공시가격 변동으로 인한 조세 불만을 다독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어 "보유세가 경감돼 알짜 지역의 매각 고민은 줄어들 것"이라면서도 "이자 부담이 과거보다 급증했고, 거래 관련 취득세와 양도소득세의 다주택자 중과 이슈로 주택을 자주 사고팔거나 추가 구매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도 "조세 저항을 줄였다는 부분은 긍정적이지만, 주택시장 활성화까지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역에 따라서는 하락 부분이 공시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며 "내년 경제 성장 전망이 올해보다 어둡고, 고금리도 지속될 전망이어서 각종 규제 완화에 따른 시장 활성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한편 국토부는 열람 기간에도 정확성 제고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히 협조해 지속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소유자와 지자체 의견 청취 후 중앙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 심의를 거쳐 다음 달 25일 최종 공시한다. 의견서는 다음 달 2일까지 온라인이나 서면으로 제출하면 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