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인간을 닮아가고 있다." 인간의 힘과 지구력을 보조·지지해주는 웨어러블(wearable) 형태의 외골격(Exoskeleton) 로봇이 진화하고 있다. 인간이 좀 더 착용하기 쉽고 가볍지만 복잡한 형태의 힘을 더 크게 쓸 수 있도록 발전하고 있다. 마치 영화 속 ‘터미네이터’ 로봇이 겉만 인간이고 속은 기계장치였던 ‘T-600’에서 감지가 어렵고 자유자재로 모양이 변하는 'T-1000'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과 비슷하다. 외골격 로봇은 먼 얘기가 아니다. 이미 각종 산업 현장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해주고 하지 마비 환자를 걷게 해 주고 군사용으로도 활용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특히 노령화로 감소하는 인간의 신체 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어 인구 고령화 시대 노동시장의 중요한 보완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외골격의 종류
구동장치 없이 단순히 탄성 구조를 활용해 인체가 움직일 때 에너지를 저장해 특정한 동작을 할 때 도움을 주는 수동 외골격이 있다. 반면 전기, 유압, 압축공기 등을 동력으로 구동장치(모터)를 이용하고 뇌파, 근전도 등 인체와 신호를 주고받아 작동하는 능동 외골격도 있다. 한국연구재단 ICT·융합연구단이 지난달 30일 펴낸 ‘외골격 연구개발 동향 보고서’를 보면 외골격은 인간의 척추 기립근 사용을 10~57%까지 감소시켜 허리의 부하를 줄이며 상체 굽힘 감도를 감소시켜 효과적이고 안전한 동작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허리를 굽혀야 해 상대적으로 작업자가 부담을 크게 느끼는 작업의 경우 외골격 착용으로 인한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 현장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 수단으로 쓰기 시작했다. 무리한 근육 사용과 부적절한 자세, 과도한 힘, 반복적인 동작 등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은 미국과 한국 등 주요 국가들의 산업재해보상비용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외골격을 착용함으로써 지구력을 늘려주거나 자세를 받쳐주면 작업자의 근골격계 질환 위험이 현저히 낮아진다. 신체 주요 부위의 생체 역학적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부상 위험을 줄여 주며 생산성 향상에도 기여한다. 특히 노령화로 인해 감소하는 작업자의 신체 능력을 강화시킴으로써 노동시장 고령화의 부작용을 예방한다. 자동차, 선박, 제조, 항공, 우주, 군사,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외골격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있는 이유다.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 온 외골격
이미 국내외에서 외골격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미국 포드사는 엑소베스트(ExsoVest)라는 외골격을 개발해 작업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상체에 착용하면 한쪽 팔로 7㎏까지 무게감 없이 들 수 있어 작업자가 팔을 어깨 위로 들고 작업을 수행할 때 써야 할 힘을 확 줄여준다.
일본의 액티브링크사에서 개발한 산업용 외골격 로봇은 모터 18개를 활용해 최대 110㎏의 무거운 물체를 들 수 있다. 또 미국 록히드마틴사와 버클리대 연구팀은 리튬폴리머 배터리 및 연료전지를 활용해 병사가 최대 90㎏의 무거운 군장을 메고도 순간 최고 속도 16㎞/h로 달릴 수 있는 착용형 로봇(HULC)을 개발했다. 보건 의료 분야에서도 미국의 리워크(Rewalk)사의 하지 외골격 수트인 리워크 퍼스널(Rewalk Personal)이 눈에 띈다. 하지가 마비된 보행자가 상체의 움직임만으로 보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본의 사이버다인사도 근전도 신호를 분석해 사용자의 의도를 인식하는 착용형 로봇을 개발했다.
국내에서도 착용형 로봇의 원천기술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다. 산업·재활 분야에서 활성화돼 있고, 기업에서도 생산 라인에 도입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현대로템은 2019년 산업용 착용형 외골격 로봇 벡스(VEX·상체용), 첵스(CEX·하체용)를 개발했고 2020년엔 근력보조 웨어러블 로봇 ‘H-프레임’을 생산 현장에 도입해 근골격계 질환 예방에 나섰다. 한국타이어도 외골격 웨어러블 로봇 ‘스텝업’을 활용해 타이어 적재 작업 등에 투입된 작업자의 허리를 보호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노약자·장애인 보행 보조용 하지 착용형 로봇인 젬스(GEMS)도 경량에 간편하게 착용할 수 있어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여전히 과제는 산적해 있다. 외골격의 구입 및 관리·활용에 따른 비용이 막대하다. 무엇보다 얻는 효용에 비해 입고 벗기가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들어 작업자들이 꺼린다. 외골격을 착용하면 해당 작업 외 이동, 장치의 조종, 운전 등 다른 기타 행동을 하기가 힘들다는 점도 활용도를 높이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인간을 닮아라
외골격, 착용형 로봇은 이제 착용감은 물론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높여 제 몸처럼 활용하고 고난도의 복잡한 동작도 넉넉히 수행할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 우선 인간-로봇 상호작용(Human-Robot Interaction) 연구가 활발하다. 미국은 16개 정부기관, 56개 기업, 13개 대학, 10개 국립연구소가 대대적으로 참가한 가운데 군사용 착용 로봇인 ‘전략돌격용 경량 작전 수트’를 개발하면서 인간-로봇 간 물리적 상호작용과 사용자의 생체 센싱 기술을 적극 연구해 적용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인간-로봇 간 상호작용과 그에 따른 안전성 확보를 주요 목표로 PHRIENDS(Physical Human-Robot Interaction : depENDability and Safety)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마인츠대가 인간-기계 간 접촉점에서 인간이 느끼는 통증을 연구해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 협동 로봇의 안전 요구 사항을 연구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일본에선 초고령사회에 따라 노약자·장애인 등의 생체 신호를 이용해 로봇이 작동하는 생활 보조용 외골격 로봇 개발이 활발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카메라·센서를 통해 사용자의 움직임·목소리·얼굴 등을 인식해 로봇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혁신적 웨어러블 환경을 연구 중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AI와 빅데이터, 첨단 소재 기술을 통해 인간을 닮은 외골격 로봇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5일 카이스트(KAIST) 김상욱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헤라클레스급’ 인공 근육 소재 개발이 대표적이다. 기존 외골격, 착용형 로봇의 경우 유압 장치 등 기계를 사용해 힘을 냈다면 이 인공 근육은 인간의 근육과 유사해 실용성이 높으면서도 사람보다 17배 이상의 힘을 낼 수 있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 교수는 "기존의 인공 근육 소재들은 옆으로만 휘거나 동력을 얻기 위해 감았다가 푸는 등 예비 동작이 필요했다"면서 "이번에 개발한 인공 근육은 인간처럼 부드러운 섬유 다발로 이뤄져 있고 길이가 수축하면서 힘을 발휘하고 무한대로 반복 수축할 수도 있다. 인간의 근육이 전기 신호에 의해 움직이지만 빛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교수팀의 인공 근육은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 실용성에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 김 교수는 "기존의 로보틱스는 유압식이나 기계식이지만 이번 인공 근육의 개발로 아바타나 헐크처럼 미래 합성 생명체를 만들 때 기계가 아닌 인간의 근육과 유사한 합성 조직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면서 "당장은 인간이 입고 착용할 수 있는 인간 증강에 활용이 가능하고 신경과 연결해 인체 내에 심을 수 있는 인공 근육으로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공 구동장치를 통한 모든 퍼포먼스, 즉 속도·변형·에너지·강도 등이 생명체보다 뛰어난 인공 근육 개발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로봇 산업 및 다양한 웨어러블 장치에 활용할 수 있으며 4차 산업 혁명에 따른 비대면 과학기술에서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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