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미생물로 병을 고치는 시대가 열렸다. 미국에서 사상 첫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치료제가 승인되는 등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궤도에 올라서면서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스위스 페링제약의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리 감염증(CDI) 치료제 '레비요타(RBX2660)'를 승인했다.
CDI는 항생제 복용 등으로 인해 장내 세균총이 파괴되면서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리균이 과다 증식해 심각한 설사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아직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 이에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이식받아 장내 미생물을 체내에 옮겨 정착시키는 대변 이식술이 치료법으로 쓰이기도 할 정도로 장내 미생물의 상태가 중요한 질병이다. 미국에서는 연간 1만5000~3만명이 CDI로 인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페링에 따르면 레비요타는 임상에서 8주간 CDI 재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치료 성공률'이 70.6%로 위약군의 57.5%보다 높았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 9월 FDA의 백신·생물의약품 자문위원회(VRBPAC)도 레비요타가 재발성 CDI 감염증 치료에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의견을 각각 13대 4, 12대 4의 표결로 획득한 바 있다.
현재 세레스 테라퓨틱스도 CDI 치료제 'SER-109'의 생물학적제제 허가신청(BLA)을 제출했다. 처방약물사용자수수료법(PDUFA)에 따른 허가 심사 기한은 내년 4월 26일로 설정됐다. 임상 3상에서 CDI 재발률을 8주 차 8.7%, 24주 차 13.7%로 낮추는 효과를 나타냈다. 위약군은 각각 60%, 53%의 재발률을 보였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micro)과 생태계(biome)의 합성어다.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수십조개의 미생물과 그 유전자를 뜻한다. 70㎏ 성인 한 명이 몸 안에 약 38조개의 미생물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각자의 마이크로바이옴에 따라 건선, 역류성 식도염, 비만, 대장염, 심혈관계 질환 등 다양한 질환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를 통해 병을 낫게 한다는 새로운 접근법이 이뤄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드마켓은 세계 마이크로바이옴 시장이 내년 2억6900만달러(약 3516억원)에서 2029년 13억7000만달러(약 1조7906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이를 미래 먹거리로 보고 대기업 또는 대형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기업을 직접 인수하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유한양행 은 지난 9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개발 기업 에이투젠을 토니모리 로부터 인수했다. 이후 지난달 세균성 질염 치료제 'LABTHERA-001'의 임상 1상을 호주에서 시작한 상태다. 당초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 )을 매각하면서 바이오 사업에서 철수하는 듯 보였던 CJ제일제당 은 지난해 천랩(현 CJ바이오사이언스)를 인수하면서 다시 바이오에 진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고바이오랩 , 지놈앤컴퍼니 , CJ바이오사이언스 등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소화기 질환뿐 아니라 암, 건선, 알츠하이머 등 다양한 적응증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가장 앞서가고 있는 건 고바이오랩이다. 'KBL697'이 건선 치료제로 개발 중인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고, 동시에 궤양성대장염에 대한 2a상 임상시험계획(IND)도 FDA에 신청한 상태다.
지놈앤컴퍼니도 'GEN-001'을 면역항암제로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 위암 치료제로 2상을 진행하는 한편 담도암을 타깃으로 한 MSD(미국 머크)의 '키트루다'와의 병용 임상 2상도 지난달 승인받았다. CJ바이오사이언스도 항암제 'CLCC1', 'CJRB-101' 등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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