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와치]당신의 직원은 행복한가요?

[최지혜의 트렌드와치]당신의 직원은 행복한가요? 원본보기 아이콘

“이 회사에서의 1년 후, 혹은 3년 후가 전혀 기대되지 않아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것은 꽤 오래된 일이지만 최근에는 근속 연수가 더욱 짧아지는 추세다. IT조선과 비즈니스 플랫폼 ‘리멤버’의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직장인의 4명 중 3명은 입사하면서 퇴사를 고민한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가 한국 등 31개국 전 세계 3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1년 워크 트렌드 인덱스’ 보고서에서는 41%의 응답자가 조만간 직장을 그만둘 계획이라고 답했다. 링크드인이 실시한 비슷한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75%가 ‘현재 직장의 근무 조건’과 관련해 이직 등을 고려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조용한 퇴사(Quiet Quitting)’열풍이 주목받는다. 조용한 퇴사란 실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과 업무 범위 내에서만 일하고 초과근무를 거부하는 노동방식을 뜻한다.


현재의 오피스 이탈 현상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직이나 사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잦은 이직 경험이 조직에 적응을 못 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했다면, 오늘날 이직은 내가 원하는 업무 조건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커리어 개발 과정으로 여긴다.


이에 따라 떠나는 직원들을 붙잡기 위해 기업과 조직은 분주하다. 특히 국내 대기업들은 복리후생에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2년 1~9월 삼성전자의 복리후생비는 2021년보다 23% 늘었다. 2021년 연간 복리후생비가 9%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더 컸다. LG전자는 2022년 3분기까지 복리후생비가 29.6% 증가했고, SK하이닉스도 2021년도 대비 2022년도 3분기까지의 복리후생비가 20% 늘었다.

규모의 증가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M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핀셋 복지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LG유플러스는 5대 그룹 중 처음으로 ‘비혼지원금제도’ 도입을 선언해 화제가 되었다. 비혼지원금제도란 비혼을 선택한 직원에게 기본급 100%와 유급휴가 5일을 제공하는 것인데, 이는 결혼 축하금과 동일한 수준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향후 HR의 역할은 단순히 복지를 개편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019년 5월 설립된 HR플랫폼 스타트업 ‘플렉스’는 HR을 ‘Human Resource’가 아닌 ‘Human Relations’로 정의한다. 구성원을 인적자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맺는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은 직원의 입사부터 퇴사까지 전 과정에서 인간 중심적으로 접근하는 조직의 태도에 관한 조언이다. 다시 말해 조직이 구성원들의 생애주기를 함께 고민해주는 직장인 생애주기 관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고가의 요가복으로 유명한 룰루레몬은 온보딩 기간 동안 신입직원들에게 커리어와 개인적인 목표를 설정하도록 장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의 CEO가 되는 것이 목표인 직원도, 언젠가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창업하는 것이 목표인 직원도 똑같이 지지를 받는다. 온보딩 과정에서 직원 개인의 야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더 나아가 룰루레몬은 신입직원의 온보딩 만큼 퇴사자의 온보딩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튜디오나 체육관을 열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을 룰루레몬의 ‘앰배서더’로 만들고, 지역 룰루레몬 매장에 이들의 사업을 소개하는 사진이 전시된다. 회사를 떠난 직원이라도 지속적인 관계맺기를 통해 이전 직원들의 성공에 깊이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직장인 생애주기관리는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한 인간으로서 개인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느끼게 한다.


사직 열풍과 HR기조 변화의 배경에는 조직의 성장과 나의 성장을 일치시키지 않는 세대적 특성이 자리한다. 특히 MZ세대는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조직이 나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득한 세대다. 조직의 성장을 보며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아 業(업)의 포트폴리오를 쌓아나갈 수 있는 조직을 찾는다는 뜻이다. 이들에게는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조직은 어디인지 혹은 어떤 업무로 나의 경쟁력을 키울 것인지가 중요하다.


서두에서 언급한 IT조선과 비즈니스 플랫폼 ‘리멤버’의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관찰됐다. 응답자의 25%가 회사 또는 동료에게 인정받는다면 퇴사 결정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조직의 성장을 위해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게 한 인간으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구성원이 회사에서의 3년 뒤가 기대되지 않는다는 발언은 사실 개인에게 동기부여를 하지 못한 조직의 뼈아픈 실패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또한 “조용한 사직은 직원에 대한 동기부여의 부족이자 신뢰할 수 없는 리더십이 빚어낸 조직 관리의 실패”라고 분석한 바 있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낸다. 일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다면 인생의 절반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우리 조직에 있는 구성원은 과연 행복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을까. 제품과 브랜드를 사랑해주는 외부고객, 소비자도 중요하지만 조직의 내부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노력이 충분히 인정받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시점이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