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가상공간 속 자신의 아바타를 위해 새 옷을 마련했다. 김씨는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이라 패딩을 하나 장만했다"면서 "다른 아바타들도 계절에 따라 패션이 바뀐다"고 말했다. 이어 "루이비통 등 실제 명품 브랜드를 입고 있는 아바타도 많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메타버스(가상세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가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과 협업해 Z세대의 디지털 패션 트렌드를 분석한 '2022 메타버스 패션 트렌드(2022 Metaverse Fashion Trends)'를 최근 발표했다. 로블록스 플랫폼 이용자 행동 데이터와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Z세대는 표현의 수단으로 아바타의 스타일과 디지털 패션에 기꺼이 돈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 기준으로 ▲최대 5달러(약 6500원)를 지출한다는 응답자 31% ▲10~20달러(약 1만3000원~2만6000원)를 지출한다는 응답자가 30%에 달했다. 월 50~100달러(약 6만5000원~13만원)를 지출하는 이용자도 12%에 달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로블록스 Z세대 이용자의 절반은 최소 매주 한 번 이상 아바타의 옷을 꾸민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47%가 아바타에 옷을 입히는 것에 대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답했으며, 이를 통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43%) ▲디지털 컬렉션을 자랑할 수 있다(35%) ▲디지털 공간에서 친구나 동료와 더 연결된다고 느껴진다(32%)고 답했다.
돈을 들여 옷을 사는 등 아바타를 꾸미는 일은 생소하게 보일 수 있으나,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친숙한 모습이다. 구찌와 루이비통, 나이키 등 대다수 글로벌 패션 브랜드는 이미 '디지털 패션' 시장에 진출했다. 이들 기업은 대체불가토근(NFT)을 이용해 디지털 콘텐츠에 희소성을 매겨, 옷, 가방, 운동화 등을 판매하고 있다.
예컨대 내 아바타에 신상 루이비통 가방을 선물하면, NFT 희소성으로 전 세계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가방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 구찌는 이탈리아 피렌체 매장를 통째로 옮겨 온 듯한 '구찌 빌라'를 제페토(네이버제트가 2018년 8월 만든 가상공간)에 오픈하기도 했다.
시장에서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블록체인 시장조사업체인 댑레이더에 따르면 2021년 미술작품과 패션 등 전 세계 NFT 거래액은 총 250억달러(약 30조원)로 2020년 거래액 9490만달러(약 1130억원)보다 26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는 디지털 패션 산업이 2030년까지 500억 달러(약 70조 8000억원)의 가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패션 업계도 이른바 '아바타 옷'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내 의류기업 F&F는 올 2월 메타버스 패션브랜드 '수프라'를 선보였고, 롯데홈쇼핑은 디지털 패션 'LOV-F'를 출시했다. 롯데홈쇼핑은 자사 앱 내 NFT 마켓플레이스에서 LOV-F의 가상 제품을 실물 상품과 연계해 판매 중이다. 코오롱 FNC의 여성 브랜드 '럭키슈에뜨'는 메타버스 플랫폼 럭키타운을 운영 중이다. 럭키타운은 모델의 착용 모습을 360도로 보여주는 서비스로, 고객은 제품을 착용했을 때 모습을 실제와 비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업계는 디지털 패션 시장이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크리스티나 우튼(Christina Wootton) 로블록스 글로벌 파트너십 담당 부사장은 "차세대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는 아바타에 옷을 입히고, 패션 컬렉션의 3차원 디지털 버전을 디자인하고, 메타버스 전용 아이템을 만드는 등 디지털 패션에 깊이 관여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Z세대 소비자들이 몰입형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패션에 대한 경제력과 영향력이 점점 커짐에 따라 메타버스의 트렌드가 현실세계의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현실 세계의 트렌드 역시 메타버스 세계에도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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