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일본 반도체장비 기업의 '자존심'인 도쿄일렉트론(TEL)은 한국 경기도 화성시에 설비투자를 해 관심을 받는 주요 장비 업체다.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13.4%로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18.6%), 네덜란드 ASML(18.1%), 미국 램리서치(15%)와 함께 '세계 4대 기업'으로 거론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이 회사는 코터 디벨로퍼 등 트랙 설비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87%가량을 차지하는 정상급 업체다. 식각 27%, 증착 38%, 세정 20%, 테스트 45% 등 반도체 주요 공정에 필요한 장비 포트폴리오를 두루 갖춰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하다는 평을 듣는다. 내년에 창립 60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기업이기도 하다. 일본 도쿄도 미나토구에 위치한 기업으로 매출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163억7230만달러(21조9420억원)이다. 임직원은 1만5140명, 시가총액은 7조800억엔(약 68조7570억원)가량 되는 업체다.
일본이 세계 주요 공급망인 '칩4'(Chip4·한국 미국 일본 대만)에 편입되도록 기여한 공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업체다. 미국(설계)-한국 대만(제조)와 견줄 수 있는 일본만의 차별점은 '장비'다. 일본 최고 장비 업체인 만큼 일본이 칩4에 들어와 세계 주요 공급망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한 공헌이 작지 않다는 평을 듣는다.
이 회사가 고꾸라지면 일본 정부도 곤란해진다. 일본 정부는 구마모토현에 2024년 말 생산을 목표로 하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공장을 지난 4월21일 착공한 바 있다. 마침 지난 11일 도요타, 소니, 소프트뱅크, 키옥시아(옛 도시바 메모리) 등 일본의 '민간 드림팀' 기업 8곳이 함께 '라피더스'란 기업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 내수 시장 모멘텀(성장 동력) 확보 여부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어 공급망의 핵심 역할을 할 TEL의 경영 행보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이 회사가 왜 화성 투자에 나섰는 지가 관심사다. 힌트는 이 회사의 매출 비중에서 찾을 수 있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TEL의 올해 매출 비중 1위가 중국 시장으로 28%에 달한다. 2위가 한국 시장(19%)이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장비 반입 규제 직격탄을 맞은 국가다. TEL로서는 매출 비중 4분의 1이 쏠려 있는 중국 시장 리스크 분산에 사활을 걸 때다. 한국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도 일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세계 3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 중 두 곳의 생산 시설이 집적된 최적의 투자처기도 하다.
TEL은 자체 연구개발(R&D) 투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TEL은 향후 5년간 1조엔(9조5500억원) 이상을 반도체 선폭 미세화 공정 등 R&D에 투입키로 했다. 최근 5년간 쏟아부은 4000억엔(약 3조8000억원)의 배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 확대, 수요 감소, 반도체 업황 악화 같은 거시 변수는 TEL에도 부담이다. 하지만 TEL이 일본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미세 공정에 최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춘 점 등은 매력적이라는 평가에 힘이 실리는 게 사실이다. 반도체 전문가인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TEL에 대해 "코터와 디벨로퍼(트랙 설비)에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식각, 증착, 세정 장비 토탈 솔루션을 갖고 있는 회사"라며 "반도체 공정 미세화 흐름에 걸맞은 핵심 동반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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