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권재희 기자] 올들어 대형 증권사들이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한 발행어음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단기자금시장 경색 등 유동성 확보가 절실해지자 발행어음 자금줄까지 총동원해 자금 마련에 매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13일 발행어음 발행이 가능한 대형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의 발행어음 잔고 분석 결과 지난해 말 대비 최근 잔고가 4개 사 모두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가장 크게 늘어난 곳은 미래에셋증권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4365억원에서 지난 9월 말 기준 4조4232억원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NH투자증권도 약 3조4000억원에서 5조4000억원으로 58.8% 증가했으며 KB증권은 4조4745억원에서 6조7844억원으로 51.6% 확대됐다.
현재 기준 발행어음 잔고 액수 자체는 한국투자증권이 가장 많다. 지난달 말 기준 12조1990억원으로 지난해 말(8조3719억원)보다 45.7% 늘었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대형 증권사들이 자체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1년 이내의 단기 금융상품이다.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곳은 대형사 중에서도 미래에셋증권·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KB증권 등 4곳뿐이다. 이들은 자기자본의 200% 한도 안에서 발행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현재 이들 4개 사의 발행어음 상품 금리는 유형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5%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KB증권은 연 6% 약정식 특판 발행어음을 출시하기도 했고 한 증권사의 경우 일부 지점을 통해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연 8%대 금리의 특판 발행어음을 판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발행어음 규모가 급증한 것은 '유동성 가뭄'에 시달리는 증권업계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를 시작으로 단기자금시장 투자심리가 급랭하면서 PF ABCP 차환이 어려워지자 관련 사업을 활발히 해온 증권사들의 유동성 경색 리스크도 불거진 상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증권사들은 자금조달 수단에 목말라 있는 상태"라며 "대형사로서는 발행어음에 대한 매력도와 활용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분석했다.
지금의 금리 상승기를 고객 유치나 투자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측면도 있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발행어음의 높은 금리를 앞세워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하면 다른 거래도 유치할 수 있고, 발행어음으로 자금 여력이 생기면 고금리 상품에 투자해 증권사 자체 수익을 낼 수도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발행어음 급증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가 발행어음으로 수익을 내려면 고객에게 제공하는 금리보다 수익률이 높은 상품에 투자해 마진을 남겨야 하는데, 지나치게 높은 금리의 발행어음을 내는 곳은 수익을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돈이 급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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