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국유림 대부권을 양도하면서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지 않았더라도 국가에 대항할 수 없을 뿐 당사자간의 계약은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자신이 사용 권한을 가진 준보전국유림 내 건물에서 퇴거하라며 낸 토지인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준보전국유림은 학술적 이유나 문화재로서의 가치 등을 이유로 산림청장이 '보전국유림'으로 구분한 국유림 이외의 나머지 국유림을 통칭하는 용어다.
재판부는 "원심은 산림청장의 허가를 이 사건 양도계약의 효력요건으로 보고 이 사건 양도계약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원고의 이 사건 관리사 퇴거 청구를 받아들였다"며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이 사건 양도계약의 효력, 유동적 무효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A씨의 아버지 C씨는 1998년 12월 사위와 함께 산림청 수원국유림관리소로부터 경기 화성시 팔탄면 소재 임야 6292㎡를 산업용(야생조수인공사육)으로 사용 및 수익할 수 있도록 대부받았다.
C씨는 관리사 건물을 짓고 꿩 농장을 운영했는데, 공동 대부권자인 사위는 2001년 3월 수원국유림관리소의 허가를 받고 자신의 공동 대부권을 D씨에게 양도했다.
D씨와 함께 대부 계약을 갱신하며 꿩 농장을 운영하던 C씨는 2012년 E씨에게 토지에 관한 공동 대부권과 관리사를 비롯한 전체 농장을 1억원에 양도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이 점유하던 관리사의 점유를 E씨에게 이전했다.
애초 C씨는 E씨와 계약을 체결할 당시 E씨의 아내에게 수대부자(대부를 받은 사람) 명의를 이전해주기로 약정했기 때문에 2014년 3월 수원국유림관리소에 대부권을 E씨의 아내 명의로 양도하는 허가 신청을 했지만 '대부지 경계표주가 설치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C씨는 2015년 5월 다시 한 번 양도허가 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사위로부터 대부권을 넘겨받은 공동 대부권자 D씨가 동의해주지 않아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B씨는 2015년 E씨로부터 이번 퇴거 소송의 대상이 된 관리사의 점유를 넘겨받아 점유해왔다.
2017년 8월 C씨가 사망하자 아들 A씨는 2018년 1월 수원국유림관리소로부터 상속에 따른 명의변경 허가를 받아 C씨의 대부권을 승계했다. 그리고 B씨를 상대로 민법상 방해배제청구권을 행사, 퇴거하라는 소송을 냈다.
A씨는 재판에서 자신의 부친 C씨와 E씨 사이에 체결한 대부권 양도계약은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했다.
국유림법 제25조(권리양도·명의변경의 제한) 1항은 '국유림의 대부 등을 받은 자가 그 권리를 양도하거나 명의를 변경하고자 하는 때에는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재판에서는 이 같은 산림청장의 허가가 대부권 양도의 효력요건인지가 쟁점이 됐다.
앞서 1심과 2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국유림법 제25조 1항이 '국유림의 대부 등을 받은 자가 그 권리를 양도하거나 명의를 변경하고자 하는 때에는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26조 1항 4호는 이를 위반한 때 '대부 등을 취소하고 대부 등을 받은 국유림의 전부 또는 일부를 반환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국유림은 국가 소유의 임야로 종합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산림청이 정기적으로 실태를 조사하고 10년 단위로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도록 하고 있는데, 대부가 된 경우에도 국가의 적절한 관리가 이뤄질 필요가 있는 점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양도계약을 유효하다고 본다면, 국유림법에서 정하고 있는 국가의 국유림에 대한 관리권이 형해화 될 우려가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대부권 양도계약의 효력'을 '유동적 무효'라고 판단했다.
즉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국유림 대부권 양도계약은 일단 무효이며, 나중에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으면 계약 체결시로 소급해 유효가 된다고 본 것.
또 재판부는 "유동적 무효 상태의 계약은 행정청의 불허가처분이 있은 때뿐만 아니라 당사자 쌍방이 허가신청 협력의무의 이행거절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도 더 이상 유동적 무효 상태가 지속된다고 볼 수 없어 확정적으로 무효가 된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경우 A씨의 부친 C씨가 두 번째로 산림청장 허가를 받으려 했을 때 공동 대부권자인 D씨가 거절 의사를 밝혔을 때 확정적으로 C씨와 E씨 사이에 체결한 대부권 양도 계약이 무효가 됐다는 결론이다.
결국 재판부는 B씨에게 퇴거할 것을 명하면서 소송비용도 피고 B씨가 부담한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이 같은 1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원용해 "국유재산법상 일반재산에 관한 관리·처분의 권한을 위임받은 기관의 일반재산 대부 행위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경제 주체로서 상대방과 대등한 위치에서 행하는 사법상 계약이므로 그 권리관계는 사법의 규정이 적용됨이 원칙"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이는 국유재산법상 일반재산에 해당하는 준보전국유림도 마찬가지다"라며 "준보전국유림에 관한 대부 계약은 국가가 사경제 주체로서 대부를 받는 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체결한 사법상 계약이므로 그에 관한 권리관계를 특별히 규제하는 법령이 없는 이상 민법상 임대차에 관한 사법상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국유재산법상 일반재산에 해당하는 준보전국유림은 보전국유림 외의 국유림으로 국유재산으로서 공적 특성이 비교적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유림법은 준보전국유림을 대부받은 자가 그 권리를 양도할 경우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정하고 있으나 준보전국유림을 대부받은 자가 산림청장의 허가 없이 한 권리양도의 효력에 관해 별도로 정한 바가 없고 산림청장의 허가 없는 양도행위를 처벌하는 조항도 두지 않았다"며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준보전국유림을 대부받은 자가 권리를 양도할 때 산림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은 준보전국유림이 대부 목적에 맞게 사용되도록 하고 대부 현황을 파악해 준보전국유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에 따른 것일 뿐, 산림청장의 허가를 양도행위의 효력요건으로 정해 허가가 없으면 양도행위의 효력 자체를 부정할 목적에 따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준보전국유림을 대부받은 자가 제3자에게 그 권리를 양도하는 행위의 효력을 제한하는 특별법의 규제가 없는 이상 민법상 임대차에서 임대인의 동의 없이 임차권이 무단양도된 경우에도 임차권 양도계약이 유효한 것과 마찬가지로 준보전국유림을 대부받은 자가 제3자에게 그 권리를 양도하는 계약도 유효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 관계자는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이 밝힌 법리에 따라 망인(C씨)과 제3자(E씨) 사이의 대부권 양도계약이 유효라는 전제에서 원고에게 피고에 대해 퇴거를 구할 권원이 있는지, 피고에게 적법한 점유권원이 있는지 등을 심리해 원고 청구의 당부를 다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판결은 국유재산법상 일반재산 대부권양도에 요구되는 산림청장의 허가는 대부권 양도계약의 효력요건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기존 판례 법리가 국유림 대부권 무단 양도에도 적용되고, 따라서 민법상 임대차와 마찬가지로 국유림 대부권 무단 양도 계약은 국가에 대항할 수 없을 뿐 대부권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에서 채권계약으로서는 유효하다는 점을 최초로 명확히 판시한 데에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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