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오는 기준 가격인 '전력도매가격(SMP·System Marginal Price)'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한전의 재무 부담이 한층 가중되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전력구매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서다. 이에 정부가 다음 달부터 전력 구매 정산가격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SMP상한제' 도입을 검토 중이지만 민간 발전사들의 반발이 거세 이마저도 쉽지 않은 딜레마에 빠졌다.
5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SMP(육지 기준)는 지난 3일 한때 kWh(킬로와트시)당 300.22원을 기록했다. 이달 들어 처음으로 kWh당 300원을 돌파한 것이다. 이미 지난달 20일에는 한때 SMP가 359.5원까지 치솟으며 2001년 전력거래소 설립 이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앞서 최고치는 2010년 1월 14일 기록한 335.17원이다. SMP가 오를수록 한전은 발전사에 더 많은 전력비를 지급해야 한다.
치솟는 SMP로 전기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되자 정부는 '전력시장 긴급정산상한가격(SMP 상한제)'을 다음달 중 도입하기로 하고 관련 절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5월 SMP상한제를 고시하고 적용 시기를 검토한 바 있다. SMP상한제는 전력도매가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까지 상승할 경우 한시적으로 평시 수준 정산가격을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산업부가 고시한 SMP상한제 초안에는 '직전 3개월 SMP 평균'이 '과거 10년 동안 월별 SMP 평균값의 상위 10%'보다 크거나 같을 때 발동한다. 당시 민간 발전사들의 반발로 시행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최근 SMP 급등하자 정부가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실제 도입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민간발전사들이 SMP 상한제 철회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SMP 상한제가 한전 적자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부적절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SMP 상한제가 시행되면 최근 kWh당 250원대인 SMP가 kWh당 평균 80~100원가량 낮아져 발전사들의 전력 판매 이익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발전사가 연료를 kWh당 160원 수입해 전력을 생산해 250원에 판매할 경우 90원의 이익이 나지만 상한제를 적용하면 실제 수익이 절반 이상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에너지 생산단가보다 SMP가 낮을 경우 차액만큼 보상을 약속했지만, 발전사 입장에서 손해이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SMP 상한제 도입을 위해 발전사들에 최대한 협조를 구한다는 방침이다. 전력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한전으로선 SMP 상한제가 절실하다. 최근 채권시장 경색으로 한전의 신규 경영자금 확보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팔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 역시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한전은 지난달 말까지 약 26조16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해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력 구입 등 월평균 2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최근 채권시장의 유동성이 악화하는 이른바 '돈맥경화' 현상으로 한전은 6%대에 달하는 고금리로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다음 달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에 전력도매시장에 가격 입찰제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시행 여부는 미지수다. 또 가격 입찰제를 시행하더라도 이는 장기적인 전력 수급 계획으로 당장 올겨울 한전의 적자구조 증가를 막을 수 없다. 한전의 올해 예상 적자 규모는 30조1250억원으로 금융업계는 2024년까지 영업손실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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