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채권시장 경색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 한전채를 올들어 10월까지 26조원 이상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연간 발행액(약 10조4300억원)의 2.5배에 달하는 규모다. 전력을 비싸게 사들여 싼값에 판매하는 적자 구조 탓에 채권 발행액을 늘려 장기간 운영자금으로 조달해온 결과다. 정부와 금융권에서 한전채 발행 최소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달 중 2조~2조5000억원의 신규 운영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한전의 ‘자금경색’ 고민도 커지고 있다.
2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한전이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발행한 채권 규모는 약 26조1600억원이다. 회사채 23조9000억원, 해외채 16억달러(약 2조2600억원)를 합산한 금액이다. 한전은 6월과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각 8억달러씩 해외채를 발행했다. 운영자금으로 월 평균 2조6000억원의 채권을 발행한 셈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올해 총 채권 발행액은 30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이 상환해야 할 누적 채권액은 62조7800억원에 달한다.
대량으로 쏟아지는 한전채가 자금 조달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전이 올 상반기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전체 회사채 발행액의 38%다. 한전 회사채 평균금리는 올해 1월 2.71%에서 지난달 5.73%로 2배 이상 올랐다. 초우량 한전채가 불러온 채권시장의 수요 위축이 결국 금리 상승의 악순환으로도 이어졌다.
문제는 한전의 고질적인 역마진 구조를 없앨 근본적인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회사채 발행액을 줄일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한전은 운영비 조달을 위해 차선책으로 금융권 대출과 해외 채권 발행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회사채 발행 없이 당장 이달에 필요한 운영자금 2조원대를 마련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은행 대출 확대 방안을 놓고 금융권 일각에선 ‘아랫돌 빼 윗돌 괴는 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 대출로 채권시장의 압력을 덜어줄 수는 있으나 결국 금융기관의 공급 부분을 제한하게 돼 유동성을 위축시키는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안인 해외채 발행 규모를 늘리는 방안도 쉽지 않다. 해외채 발행에 대한 환위험 노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뿐더러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한 불안감이 해외 단기 채권 금리를 5%대로 끌어올리면서 이자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앞서 한전은 6월 해외채 3년물 달러 표면금리 3.675%, 5년물 4.0%로 발행했으나 지난달에는 3.5년물 5.375%, 5.5년물 5.5%로 평균 1.5%포인트 높였다.
내년 전망 역시 밝지 않다. 당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원유 등 국제 에너지값 상승세가 지속하고 있고, 한전채 발행 한도를 기존 2배에서 5배까지 상향할 경우 시장 자금이 한전채로 쏠리는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업계는 한전의 적자 상태가 오는 2024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한전의 올해 누적적자는 30조1250억원, 2023년 14조8500억원, 2024년 1조7100억원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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