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은 27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탈북 어민 북송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월북 판단 과정에서 부당한 조치나 개입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감사원이 지난 13일 발표한 '서해 공무원 피격' 감사 결과를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현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안보 문제를 북풍 사건화하면서 전 정부에 대한 정치 보복에 매달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감사원은 전임 문재인 정부가 근거가 불충분함에도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단정했고, 초동조치 또한 부실했으며, 자료 삭제 등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관련,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은 지난 22일 검찰에 구속됐다. 양측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사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이 끝없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문재인 정부가 왜 월북이라고 판단했는가이다. 기자회견에서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문 정부 인사들은 △ 특별취급(SI) 첩보에 '월북'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고 △ 선박에 이씨 것으로 추정되는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 있던 점 △ 사건 당시 기상 상태가 양호했고, 이 씨의 승선 경력 등을 고려하면 실족 가능성이 낮은 점 △ 이씨가 북측 수역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물을 타고 발견된 점 등을 월북 판단 근거로 들었다. 이들은 "북측 수역에서 발견된 실종 공무원이 SI 첩보 상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는 사실 자체를 감추거나 배제한다면 이것이 오히려 조작이지, 첩보 내용을 있는 그대로 판단에 포함시키는 것을 어떻게 조작으로 몰고 갈 수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문 정부가 불충분한 근거로 월북을 속단했다고 보고 있다. 월북 의사 표명은 북한군의 거듭된 질문 끝에 나온 것이고, 슬리퍼의 소유자가 이씨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감사원은 또 이씨가 처음 발견됐을 때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한자가 기재된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붕대를 감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이씨가 인근 해역에 있던 중국 어선에 의해 구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 정부에서 이런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월북 몰이'를 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판단이다.
그러나 서 전 실장이나 박 전 원장 등은 한자 구명조끼와 붕대, 중국 어선 등에 관해 '처음 들었다'고 면서, 새로 드러난 사실에 관해선 현 정부가 조사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첩보 보고서 삭제가 있었다'는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문 정부 인사들은 부인했다. 이들은 삭제가 아닌 "민감정보가 불필요한 단위까지 전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배포선 조정"이 있었을 뿐이라면서, 이를 "삭제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감사원은 이씨 실종 다음 날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1시 관계장관회의 이후 서욱 전 장관 지시로 국방부가 군 첩보 관련 보고서 60건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또 국정원은 첩보 보고서 46건을 무단 삭제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국가안보실은 이씨 실종 원인을 실족 등으로 추정했으나, 회의 이후 자진 월북으로 결론지은 것으로 감사원은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문 정부 인사들은 "은폐를 시도했다면 관계장관들과 보좌진까지 7~8명에 이르는 인원이 심야에 청와대에 모여 회의를 할 이유가 없다"며 "생산·분석·검증·판단에 이르기까지 첩보의 정보화 과정에 관여하는 인원만 해도 다수인 상황에서 은폐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원장은 국정원의 경우 "제가 삭제를 지시한 적도 없지만, 설사 지시를 했다고 해도 직원들은 이런 지시를 따를 만큼 타락한 바보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지난 7월 첩보 보고서 무단 삭제를 지시한 혐의(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등)로 박 전 원장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감사원은 9월 22일 이씨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것을 당시 정부가 인지하고도 송환을 위한 적극적 구조를 하지 않았고, 그 사이 이씨가 총격으로 숨졌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가안보실은 이씨 발견 사실을 국방부로부터 보고받고도 '최초 상황평가회의'를 하지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상황 보고만 올린 뒤 퇴근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와 관련해 문 정부 인사들은 "실종자가 북측 수역에서 발견된 당시에는 생명을 위협받는 위기 상황이 아니었다. 북한은 과거 전례로 볼 때 실종자를 억류하거나 송환하는 조치를 취해왔다"고 설명했다. 이씨에 대한 구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우리 군이 물리적으로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북측 수역에 진입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실종자의 위치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던 상황에서, SI 첩보만을 바탕으로 즉각적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범죄는 동기가 존재한다. 과연 이 사건 당시 이른바 '월북 몰이'를 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월북으로 몰아갈 이유도 실익도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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