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화성 탐사, 달 기지 개척 등 인간의 장거리 우주여행이 현실화하고 있다. 그만큼 멀고 외로운 우주에 고립된 인간들의 지속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식량 공급 등 다양한 기술적ㆍ인간적 요소들에 대한 해결책들이 연구되고 있다. 특히 성적 욕구와 사랑, 성폭력 방지 등에 대한 기준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24일(현지시간) 우주 전문 매체 '스페이스닷컴'에 따르면 주디스 라피에르 캐나다 라발대 교수, 마리아 산타귀다 캐나다 콩코디아대 박사과정생은 이 매체에 공동 기고문을 내 이같이 주장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늦어도 2025년 말까지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를 통해 달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 우주인을 보낼 예정이며, 2030년대에는 화성에도 유인 탐사를 실시한다. NASA와 같은 공공기관은 물론 스페이스X 등 민간 우주 개발 업체들도 우주인들의 장기간 우주비행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6개월 이상 걸리는 화성 탐사 기간 동안 신선한 식품을 공급해주고 쓰레기나 배설물을 해결하는 한편, 심우주에서 예상되는 방사선 노출과 무중력 상태에 인체가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떻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저자들이 주목한 것은 성욕과 사랑, 성폭력 방지 등의 문제다. 장기간 우주 체류 시 필수적인 사항으로 대두될 것이니만큼 시급히 토론을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2017년 전 세계적으로 시작된 '미투(#MeeToo)' 운동처럼 인류의 장기간 우주 체류가 본격화되는 지금 우주판 미투도 예상되는 만큼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기고문의 저자 중 한 명인 라피에르 교수는 1999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실시된 모의 우주정거장 장기 체류 실험에서 성추행을 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라피에르 교수는 당시 110일간 러시아의 미르 우주정거장을 본뜬 시설에 체류하는 실험에 총 8명 중 유일한 여성으로 참가했다. 그런데 실험 시작 후 한 달 만에 러시아인 사령관이 그녀에서 "'동료들의 성적 대상'으로 취급받는 실험을 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해왔다. 그 후 러시아인 사령관은 그 해 마지막 날 그녀에게 "지금이 실험을 할 때"라면서 반복된 중지 요청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붙잡고 키스를 했다.
라피에르 교수는 즉시 소속 캐나다 우주청에 신고했고 조사를 받았다. 그런데 러시아 매체들은 그녀가 우울증에 시달렸고 단지 동료들 간의 몸싸움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축소 보도했다. 결국 이같은 갈등으로 인해 해당 실험은 기간이 축소돼 조기 종료됐고 라피에르 교수는 폭로 이후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같은 사건은 2022년 '라스트 엑시트 : 스페이스'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저자들은 현재 라피에르 교수의 사례처럼 극단적 상황에 처한 다른 곳에서도 성폭력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올해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290명의 미국 남극 프로그램(USAP)에 참가한 여성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72%가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고, 47%는 성추행을 겪었다고 답했다. 지난해 민간 우주 업체인 블루 오리진, 스페이스X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21명의 전·현직 직원들이 성차별적 직장 문화,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행동, 고위 간부들의 성희롱 사례를 폭로했었다.
저자들은 "NASA와 다른 우주 개발 관련 조직들은 기본적인 것보다 훨씬 더 진보된 성추행 방지 정책을 구현해야 한다"면서 "피해자, 생존자 지원 및 보호를 포함해 적절한 예방, 보고 및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우주에서의 인간관계 및 성 건강 연구에 투자하는 것도 필요하며 별도의 성ㆍ건강ㆍ심리 전문가들로 구성된 감독 기관들을 설치해야 한다"면서 "지구에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 우주여행에서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우주 탐사에서의 진정한 도전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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