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던진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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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민지 기자] 본디 ‘빌런’이라고 하면 조커와 같은 악당을 칭하지만, 요즘엔 남들과는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쓰임새가 잦다.


지난달 모두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입’만을 바라보며 금리 인상을 우려하고 있을 때,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한 콰지 콰텡 영국 재무부 장관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빌런’이었다. 경기 침체를 우려, 재정 강화에 나서는 다른 국가들과 엇박자를 내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금융시장에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공포가 켜켜이 쌓여 작은 이슈에도 민감해지는 때에 빌런이 시장에 가하는 충격은 더 매섭다. 지난달 말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도가 보증을 약속한 2050억원 규모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 자금 지급을 미루겠다고 밝히자 채권시장은 큰 발작을 일으켰다. 지자체가 보증한 최고 등급(A1) 채권에 디폴트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기업어음(CP) 금리는 한 달 만에 90bp(1bp=0.01%P) 급등하며 4%대에 육박,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당국은 화들짝 놀란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채안펀드도 신속히 가동했다.


김 지사는 레고랜드가 전임 지사가 벌인 실패작이라는 이유로 발을 빼려 했다. 문제는 레고랜드 ABCP는 국채에 준하는 채권이라는 점이다. 지자체가 보증했다는 것은 국가가 보증한 것과 같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요즘 채권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렵다. 금리 인상에 부동산 시장까지 침체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은 더 어렵다. 이런 시장에 국가기관인 지자체가 폭탄을 던진 셈이다.


결국 영국은 대규모 감세안을 ‘실수’라고 인정하며 전 세계 금융시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금융시장을 안정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였다. 시장이 강원도에 바란 것도 이러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더 이상의 빌런은 곤란하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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