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한예주 기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인자 TSMC의 미세공정 양산 로드맵에 '경고등'이 켜졌다. 선단 공정으로 돌입할수록 높아지는 생산 난도에 발목이 잡혀서다. 3나노(nm·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 수율(생산품에서 양품이 차지하는 비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신기술 도입과 2나노 미세공정 도입 시기에 불확실성을 고려하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20일 투자정보업체 시킹알파 및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TSMC는 올해 4분기 말 3나노 공정을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TSMC는 당초 올해 2월부터 대만에서 3나노 공정 생산라인을 가동해 7월부터는 3나노 기술이 적용된 인텔, 애플 등의 반도체를 양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9월 말로 양산 일정을 미루더니 이번 또 한 차례 연기해 추후 개발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TSMC는 현재 여러 파운드리 고객사들로 하여금 5나노 공정에 머무르게 하거나 4나노 버전인 N4, N4P, N4X 공정을 확대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가 3나노 공정 수율 문제를 겪는 정확한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는 3000개 이상의 프로세스를 거치는 5나노 이하 공정의 난이도를 감안할 때 공정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3나노 공정의 경우 이전 세대인 5나노와 비교해 집적소자 밀도는 50% 늘어난 반면 더 많은 비용과 더 높은 공정 기술 난이도를 요구한다.
문제는 TSMC의 차세대 공정 양산 계획 역시 줄줄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TSMC는 올해 상반기 발표한 파운드리 로드맵에서 성능·전력·밀도를 높인 3나노 2세대 공정(N3E)를 내년 하반기 양산하는 등 N3P, N3X, N3S 등 3나노 개량 버전을 순차적으로 선보인 후 2025년 2나노 양산에 돌입한다는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2027~2028년엔 1.4나노를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3나노 공정 수율이 자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3나노 반도체 파생 공정을 여러 가지로 나눠 순서대로 도입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공정이 발전할 때 성능 개선폭과 관련해 자세한 수치는 밝히지 않아 5종류에 이르는 3나노 반도체 파생 공정이 시간 간격을 얼마나 두고 도입되는지도 불확실하다. 차세대 2나노 공정 도입 시기가 늦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TSMC는 3나노 공정 기술력이 고객사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 할 가능성에 대비해 파생 공정을 5가지나 내놓았는데, 첫단추 끼우기에도 버거워하는 중"이라며 "주요 고객사들의 내년 출시 신제품에도 기존 5나노 공정을 적용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술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디지타임스는 삼성전자 게이트-올-어라운드(GAA)와 비교해 여전히 핀펫(FinFET) 구조를 사용하는 TSMC가 반도체 성능과 생산량 면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핀펫은 기존 평면펫(PlanarFET) 대비 전력 효율성과 집적도가 우수하지만, 차세대 기술로 꼽히는 GAA과 비교해서는 전류 흐름의 미세하게 조절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TSMC는 2나노부터 GAA 기술을 처음 적용할 예정이다.
'반도체 한파'에 투자 규모를 줄인 것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간 TSMC는 3나노 공정 개발을 위해 막대한 투자금을 투입했다. 2020년부터 1조5000억대만달러(약 61조5000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TSMC는 올해 연간 투자 예산을 최소 10% 삭감했다. 올해 7월에는 400억~440억달러의 자본적지출(capex)을 예상했으나 360억달러(약 51조4000억원) 수준까지 줄였다는 얘기다. 미세공정 비중을 늘리려면 수조원가량의 투자가 필수적이다. 결국 인플레이션에 따른 비용 증가와 전방산업의 수요 예측에 어려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 업계는 기술 경쟁이 공정 난도가 상승하는 3나노로 접어들면서 시장 판도가 변화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기존 5나노 이상 공정과 비교해 수율 문제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고 가격도 상승하면서 파운드리 업체가 고객사를 가려 받는 경향이 심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장에선 3나노 공정이 파운드리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2024년부터 3나노(16.1%)가 5나노(15.9%) 비중을 넘어설 것이라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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