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아쉽지만 애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있다면 바꿔야죠."
18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앞으로 음식명에 '마약'을 표기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말에,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만 15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꼬마김밥이나 새끼김밥으로 하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원래 마약 김밥은 김밥을 먹어본 청년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했고, 원래는 꼬마김밥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상인들 역시 비슷한 의견을 보였다. 한 상인은 "마약김밥이 무슨 실제 마약이 첨가된 음식이 아니라, 중독성이 강할 만큼의 음식을 말하는 게 아니겠느냐"면서 "그래도 좋지 않은 영향이 있다면 (음식 이름을)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8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광장시장은 마약김밥이라는 이름을 가진 꼬마김밥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스터 셰프 고든 램지가 2017년 11월 이 시장을 찾아 마약김밥을 먹은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음식명에서 '마약'을 뺀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광장시장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돼 국회에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8월 식품 이름에 마약 등의 표현을 넣지 못하게 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사행심을 조장하거나 음란한 표현을 사용하여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식품 명칭이나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 조항의 금지 대상을 '음란한 표현 또는 유해약물·유해물건과 관련한 표현'으로 구체화했다. 예컨대 이 법안이 통과 되면 마약김밥·마약닭발처럼 음식 이름에 '마약'이란 표현을 쓸 수 없다.
개정안 발의 당시 권 의원 등은 "현행 (금지) 규정이 사행심을 조장하거나 음란한 표현에만 한정돼 있어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등 마약 같은 약물 중독을 일으키고 사회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킬 소지가 있는 명칭까지 식품 표시·광고에 노출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해약물·유해물건에 대한 표현을 사용해 사회윤리를 현저하게 침해하는 표시 또는 광고를 금지함으로써 올바른 사회윤리 형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음식명에서 '마약'을 빼는 게 좋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날 시장 인근에서 만난 한 50대 회사원 김모씨는 음식명에서 '마약' 표기를 할 수 없다는 것에 "요즘 마약 범죄도 많은데, 음식에 마약 성분이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혹시 모를 수 있으니 음식 이름에서 마약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상인들 사이에서는 아쉽다는 말이 나온다. 한 상인은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등 이런 음식들이 진짜 무슨 마약이 들어가고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고객들도 다 알지 않나"면서 "(상인들과) 손님들과의 신뢰 관계가 있는데, 마약 관련 사건이 늘었다고 이런 규제를 꼭 해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음식명에 마약을 표기하는 것은, 마약을 자신도 모르게 친숙하게 여길 수 있고,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 마약범죄에 대한 경계심이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학과)는 "소비자 관점에서 볼 때 판매자들은 예컨대 '김밥이 아주 중독될 정도로 맛있다'를 강조하고 싶어서 그렇게 (상호를) 표기하는데, 결국 마약이 자꾸 언급되거나, 눈에 띄는 것은 보기 좋지 않고, 특히 청소년들 볼 때 그런 과정 탓에 마약에 대한 친숙도가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판매자들은 마약보다 더욱 좋은 용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단 용어 자체가 좋지 않고, 인식도 부정적"이라면서 "무엇보다 현재 우리 사회가 마약 사건에 대해 심각한 상황이므로, 이런 용어를 가볍게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영향, 예컨대 ''마약김밥' 등 음식명 표기로 (마약은)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을 수 있구나'라고 인식할 수 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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