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허경준 기자] 1950년대부터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상대로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제공한 여성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9일 이모씨 등 9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모씨 등은 1957년부터 미국 주둔지 주변의 상업지구인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다. 당시 우리 정부 총무처는 UN군 이동에 따른 성병 관리 문제 등을 이유로 UN군 출입 성매매 업소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을 특정 지역으로 집결시켜 서울에 10곳, 인천에 12곳, 부산에 2곳 등을 미군 위안시설로 지정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여성들의 성병도 조직적으로 관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해 전염병예방법 시행령에는 성병 검진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위안부를 명시하기도 했다.
이에 이들은 국가가 성매매를 지원하거나 최소한 방조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냈다. 이씨 등은 당시 공무원들이 성매매알선업자들과 유착관계에 있었고 기지촌 위안부들이 미군에 의한 살인, 폭행, 감금 등의 범죄피해를 당하고 이를 신고하더라도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등 불법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정부는 등록된 위안부들에게 정기적으로 보건소와 성병진료소 등에서 성병 검진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각 진료소의 검진에서 탈락하면 보건소 직원들에 의해 낙검자 수용소로 보내진 후 완치판정을 받을 때까지 강제 격리됐고, 성병에 걸린 위안부들에게 '쇼크사' 부작용이 있는 페니실린을 강제로 주사했다는 주장 등을 폈다.
1심은 이씨 등의 주장 중 강제격리로 인한 불법행위 부분만 인정해 강제격리 경험이 있다고 인정되는 이들에게 국가가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른 여성들의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2심은 강제격리로 인한 불법행위와 국가가 성매매를 지원하거나 최소한 방조·매개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 강제격리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는 1인당 700만원, 강제격리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1인당 300만원씩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아울러 국가는 1·2심 과정에서 이씨 등이 불법행위로부터 5년이 지나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소멸시효(5년)가 지나 배상 책임이 없어졌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국가가 오히려 기지촌 여성들의 권리행사를 곤란하게 만든 사정이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기지촌 조성·관리·운영 행위 및 성매매 정당화 및 조장 행위는 옛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인권 존중 의무 등 마땅히 준수돼야 할 준칙과 규범을 위반한 것으로서 객관적 정당성이 없어 위법하다"며 "(기지촌 여성들은) 국가의 위법행위로 인해 인격권 내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함으로써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국가가 주도해 미군 기지촌을 조정·관리·운영하고 성매매를 적극적으로 정당화 내지 조장한 행위는 과거사정리법상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 해당해 장기소멸시효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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