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편성 1주일 만에 미국에서 가장 많이 시청됐다. 한 달 동안 즐긴 세계 가입자 수는 1억4200만 가구. 그 사이 넷플릭스 시가총액은 25조원 가까이 올랐다. 지난해 10월 블룸버그가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으로 남긴 수익은 9억 달러(약 1조2501억원)가 넘는다.
넷플릭스는 이전에도 K-콘텐츠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북미 오리지널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제작비로 아시아 시장 안착을 견인했으니 효자나 다름없었다. ‘오징어 게임’이 이룬 성과는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압도적 시청률을 보이며 다양한 사회 현상을 일으켰다. 곳곳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게임이 성행했다. 초록색 추리닝과 달고나 세트도 불티나게 팔렸다.
세계적 흥행에는 코로나19가 확산하고 세계적으로 빈부 격차가 확대된 점이 영향을 미쳤다. 부의 불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글로벌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친 것이다. 수십 년간 크리에이터들이 누적한 산물이기도 하다. 이정재는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받고 "한국에는 ‘오징어 게임’ 외에도 훌륭한 콘텐츠가 아주 많다"고 말했다. 크리에이터들은 오래전부터 할리우드 콘텐츠 문법을 빌리거나 재창조했다. 보편성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장르물로 특화했다. 짙은 폭력성 등 특유의 지역성에 몰두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일본과 대조된다.
한류 열풍은 2000년대 들어 가속화됐다. 그러나 일본, 대만, 중국, 동남아 등과의 개별 계약에 따른 지역적 성공에 머물렀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이를 하나로 연결했다. 원하는 시간에 편하게 즐기도록 안내해 해외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190개국에 동시 공개됐다.
유통망은 공정하기까지 하다. 똑같은 출발선에서 콘텐츠의 힘으로만 달려간다. 인기를 결정하는 건 오롯이 시청자의 몫이다. 제한된 스크린을 여러 영화가 힘의 논리로 배분받는 극장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이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아카데미상을 휩쓸고도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적이 없다.
방탄소년단(BTS)도 세계적 IT 유통망에 기대어 글로벌 성공을 이뤘다. 유튜브를 통해 글로벌 팬덤을 양산하고 영향력을 키웠다. 빌보드 차트 1위는 사실상 이에 대한 공인이었다. 모든 결실은 음악 저작권을 보유한 기획사 하이브에 돌아갔다. 시가총액 6조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미국 메이저 음악 레이블(이타카 홀딩스)을 인수하고, ‘위버스’라는 자체 팬덤 플랫폼도 구축했다.
‘오징어 게임’을 제작한 싸이런픽쳐스의 형편은 판이하다. 넷플릭스는 이른바 제작 수수료로 불리는 마진을 총제작비의 10~20% 수준으로 지급한다. ‘오징어 게임’의 경우 약 30억원이다. 생산자가 주문자로부터 위탁받아 제품을 자체 개발하는 ODM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불공정하다. 나이키 같은 의류기업은 설계도를 주고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OEM 방식을 취하면서도 제조 업체에 30% 수준의 마진을 제공한다.
다만 싸이런픽쳐스가 밑지고 콘텐츠를 팔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오징어 게임’ 대본은 10년 이상 음지에 있었다. 국내 어느 방송사도 투자에 응하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일정한 수익을 약속하는 동시에 창작의 자유를 보장했다. 방송사나 OTT사가 창작 전반에 관여하는 일은 흔하다. 최근에도 이주영 감독이 ‘안나’를 동의 없이 편집했다는 이유로 쿠팡플레이와 공방을 벌였다. 일부 방송사는 투자금 일부를 넣고 나머지를 구해오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싸이런픽쳐스는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으로 금전적 아쉬움을 씻었다. 새 시즌 제작을 앞두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익을 보장받았다고 전해진다. 이정재도 할리우드 최고 몸값에 해당하는 출연료를 받는다고 알려졌다. 여타 작품의 제작 조건까지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1949년부터 줄곧 영어권 수상작만 나온 에미상에서 6관왕을 이뤄 또 다른 판도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시상식은 단지 작품의 성과를 인증하는 자리가 아니다. 작품이 가진 시대적 의미까지 되새긴다.
‘오징어 게임’의 수상은 한국이 글로벌 차원에서 할리우드에 이어 제2의 콘텐츠 강국이 됐음을 말해준다. 더 많은 투자와 제작을 예고한다. 넷플릭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디즈니+, 애플TV+ 등 경쟁 업체들도 앞다퉈 국내 제작사에 후한 조건을 제시한다. 하나같이 한국을 사업 전략 요충지로 보고 있다. 콘텐츠 파이프라인의 주요 원천으로 자리매김한 이상 산업 시스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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