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세종=손선희 기자] 정부가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신규 사업에 대해 실시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를 23년 만에 대폭 개편한다. 그간의 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 예타를 실시하는 사업비 기준을 두 배 상향(500억원→1000억원)하되, 면제 기준 및 제도 운영은 보다 엄격히 하기로 했다.
정부는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예타제도 개편방안을 논의했다. 추 부총리는 "예타 제도가 '재정의 문지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한편, 예타의 신속·유연·투명성도 높이고자 한다"고 개편 취지를 설명했다.
예타제도는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국비 300억원 이상'인 사회간접자본(SOC)·연구개발(R&D) 등 분야 신규사업에 대해 실시한다. 지난달까지 약 23년간 총 975개 사업(477조3000억원)에 대해 예타를 실시했고, 이 중 350개 사업(184조1000억원, 35.9%)은 타당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 기준은 1999년 제도 첫 도입 당시 설정된 것으로, 그간의 경제성장 규모를 감안하면 이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또 예타평가 기준이 시대변화에 따른 다양한 편익과 사업별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정부는 예타대상 기준을 '총사업비 1000억원+국비 5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할 방침이다. 사업비가 500억~1000억원 사이인 사업에 대해서는 각 소관 부처에서 자체 타당성 검증을 실시한다.
또 시급성이 인정되는 사업은 선정 기간을 2개월에서 1개월로 단축하고, 조사 기간도 9개월에서 6개월로 단축하는 '신속예타절차'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업착수를 위한 기간이 총 4개월 단축되는 셈이다.
단, 예타 면제조건은 보다 구체화해 최대한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과거 정권 입맛에 따라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데도 불구하고 '묻지 마 식' 예타 면제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기간(2017년 6월~2022년 4월) 동안 예타 면제가 적용된 사업은 149개로, 사업비 규모만 총 120조1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과거 이명박 정부(90개 사업, 61조1000억원)나 박근혜 정부(94개 사업 25조원) 때와 비교해도 훨씬 큰 규모다.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은 사업에 국민 혈세를 투입한 사례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이는 예타 면제조건이 모호하게 규정된 탓인데, 정부는 불명확한 예타 면제조건을 구체화하고 최대한 엄격하게 적용해 예타면제를 최소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복지사업에 대해서는 시범사업을 운영한 뒤, 이에 대한 성과 평가 후 본사업에 대한 예타 착수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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