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지정학적 긴장감도 커지면서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 물가의 경우 당초 정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최근 환율이 예상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고, 기대인플레이션까지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물가 고통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10일 한국은행과 금융시장에 따르면 물가는 국제유가나 기저 효과 등을 고려했을 때 올해 하반기 중 정점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방 리스크가 작지 않아 정점이 지연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3월 4%를 넘어 6월에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대에 진입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공급망이 불안해진 데다 국제유가도 가파르게 오른 영향이다.
앞서 한은은 물가 정점을 3분기 말에서 4분기 초로 봤다가 조금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2개월여간 국제유가가 큰 폭 하락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점은 7월 (전망)보다 당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80원을 돌파하는 등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물가 정점이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받는 분위기다. 환율이 오르면 수입물가가 올라 국내 물가 부담이 커진다.
한은은 최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물가) 상방 리스크가 작지 않아 정점이 지연되거나 고물가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진단했다. 한은은 올해 상반기 원·달러 환율 상승이 소비자물가 상승률 4.6% 가운데 0.4% 포인트를 끌어올린 것으로 추정했다.
국제 원자재가격이 최근 일부 안정세를 찾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여전한 만큼 상황이 악화할 경우 다시 공급자 측 물가상승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 또 수요자 측면에서도 코로나19 이후 민간소비의 완만한 회복세가 이어지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질적 임금 삭감 강요하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이들은 공무원 보수 1.7% 인상 거부하고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7.4% 인상을 촉구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물가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지는 것도 문제다. 경제주체들의 미래 물가 전망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은 지난해 이후 꾸준히 상승해 4%대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불안정해지면 경제 주체의 기대형성 행태가 달라지면서 물가상승 지속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지난 8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카토 연구소 주최 통화 정책 콘퍼런스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묶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물가와 임금 간 상호작용도 강화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임금상승률이 높아지면 물가상승세에 더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지면 기업이 임금상승에 따른 비용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한은은 "가파른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면서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의 상승세가 지속될 경우 장기 기대인플레이션도 상당폭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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