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기 때문에 창업하거나 경영진이 되는 것에 겁이 날 순 있어요.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여성이라는 점이 경쟁력입니다.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과정은 저를 성장시켜 줬다고 생각합니다. 육아를 하는 여성은 분명 좋은 리더십을 가지고 있을 거라 믿어요."
박지희 코코지 대표는 글로벌 대기업부터 스타트업 창업까지 국내외를 오가며 종횡무진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는 2006년부터 7년 동안 싱가포르에서 ‘인터콘티넨털 호텔스 그룹(IHG)’의 아시아 지역 디지털마케팅 총괄 업무를 담당했다. 호텔그룹사의 플랫폼 운영, 데이터 기반의 퍼포먼스 마케팅을 통해 매출을 만들어내는 일을 했다.
스타트업들이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벤처기업 문화에 친숙해졌고, 2012년 배달 애플리케이션 ‘요기요’의 공동창업자로 합류해 5년 동안 몸담았다.
그 후 온라인 투자연계 금융사 ‘렌딧’, 패션 플랫폼 ‘스타일쉐어’ 등에서 근무하다가 휴식기를 갖고 있던 무렵 코코지 창업 제안을 받았다. 요기요의 초기 투자자였던 팀글로벌의 루카시 가도우스키 대표로부터였다. 그는 "어린이용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심상치 않다"며 "유럽은 오디오 플레이어(하드웨어) 중심으로, 미국은 콘텐츠 플랫폼 중심으로 태동하는 분위기인데 아시아에는 메인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아시아권에서 사업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는데, 박 대표는 당시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며 그 권유를 고사했다고 한다.
"홀로 창업을 한다는 건 큰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흔쾌히 응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마음은 그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정작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데, 오디오 콘텐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커서인지 고사한 후 나도 모르게 4~5개월간 비즈니스 모델 만들기에 몰두하게 됐습니다(웃음)."
박 대표는 2020년 말에 코코지를 설립해 시드 투자 27억원에 이어 70억5000만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특히 프리 시리즈A 투자는 시그나이트파트너스, L&S벤처캐피탈, KDB산은캐피탈, 동아사이언스 등 국내 투자자뿐만 아니라 일본의 제트벤처캐피탈(ZVC), 독일의 팀글로벌, 중국의 시노밸리 벤처스 등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박 대표는 지난 2월 출시된 ‘코코지 하우스’에 대해 "지금까진 부모가 아이에게 스마트 기기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오디오 콘텐츠를 소비했다면, 코코지 하우스는 아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코코지 하우스는 본체(집)와 아띠(인형)로 구성돼 있다. 애플리케이션(앱) 기능과 연결된 아띠를 집 안에 넣으면 전래동화, 이솝우화, 동요, 영어 뮤지컬 등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가 재생된다. 호랑이 아띠에는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대사로 유명한 호랑이 전래동화가 나오는 식이다. 전래동화를 현대판으로 각색한 콘텐츠도 있다.
박 대표는 "공주 아띠에는 여러 개의 공주 관련 동화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백마 탄 왕자님만 기다리는 캐릭터에서 벗어나 현명하고 지혜로운 면모를 담았다"고 했다. 이어 "아이의 의지에 따라 기기 조작이 가능하고 부모의 도움 없이 주도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며 "청각 자극은 아이들의 인지, 언어, 두뇌 발달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밝혔다.
본체를 집 형태로 만든 데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이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한 ‘일상의 발견’이었다. "블록, 자동차 같은 장난감은 아이들이 빠르게 싫증을 내는 반면, ‘인형의 집’ 같은 경우 친구들과 역할극을 하더라고요. 집이라는 형태는 연령대를 초월해 오랜 기간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듯했어요." 코코지 하우스는 만 2세부터 7세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다. 완구가 아닌 오디오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친숙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게 중요했다고.
소프트웨어 개발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손으로 만지는 제품까지 제조해야 하다 보니 난관에 부딪힐 때가 많았다. 집 형태의 하드웨어 안에서 시스템을 원활하게 구현하기 위해 부품 하나하나 효율적으로 조립해야 했다고 한다. 박 대표가 그동안 해 온 플랫폼 개발업과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그는 제품을 생산할 공장부터 일일이 돌아다니며 제조 과정을 직접 확인했고 완제품이 나오기까지 공장에서 함께 지내며 협력업체와의 신뢰 관계를 다졌다.
박 대표는 "제조업은 완전히 새롭게 접하는 영역이다 보니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면서 "공장(제조업체) 선정부터 신뢰에 기반한 관계를 구축하고 제품을 생산하는 단계까지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박지희 코코지 대표가 2022 여성리더스포럼에서 '챌린지(START UP) 여성 창업가의 현재 그리고 소명'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여성 임원을 거쳐 대표까지 오는 길도 순탄치 않았지만 돌아보면 그러한 어려움이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로 올라가면 갈수록 여성의 수는 현저히 줄어듭니다. 경영진이 저 빼고 모두 남성인 적도 있어요. 제가 처한 상황을 공감해줄 거라는 기대를 하기 힘들었고 긴장된 상태에서 활동해야 했죠.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나만의 경쟁력을 확보했어요."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 여성 창업가들에게 "여성이기 때문에 스스로 약자라고 여기기보다는, 여성이라는 점이 자신만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한 입장일 것이다’ ‘더 힘들 것이다’라는 생각은 버렸으면 좋겠다"면서 "부조리를 당하거나 좋지 않은 경험을 한다고 해도 그걸 이겨내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자신감이 붙고 경력과 경험이 더해지면서 성취감을 맛보는 선순환이 일어난다"고 했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고 사업상 위기에 봉착할 때도 특유의 배짱으로 이겨냈다. 요기요 창업 당시의 경험 등이 발판이 되면서 그 어떤 힘든 상황도 버텨낼 힘을 갖게 됐다. "창업이란 건 매일 새로운 문제에 당면하는 일이에요. 힘든 일이 벌어질수록 ‘이 문제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아닐 거야, 더 큰 문제가 있을 거야’ 하는 생각으로 맞설 배짱이 생겼죠."
그의 경영 철학은 ‘공감’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공감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고 한다. 아이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엄마로서 공감해주는 것처럼, 고객을 응대할 때도 공감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리더가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인 공감 능력 역시 여성이 가진 경쟁력이라고 봤다.
박 대표는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과정이 나를 성장시켜줬다"며 "육아를 하는 여성은 좋은 리더십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그는 "오디오 콘텐츠 사업 제안이 들어왔을 때 혼자서 비즈니스 모델을 구성하고 있었던 이유도 워킹맘으로서 제품의 니즈를 공감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직원과 고객들이 공감하는 부분을 시장에 더 나은 서비스로 만들어내겠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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