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미국, 유럽, 중국 등지에서 시작된 기록적인 폭염이 가뭄으로 이어지면서 기후 재난이 현실이 됐다. 강이 마르면서 농업·제조업·운송업 등이 직격탄을 맞은 한편 원자력·수력 발전소 가동에 필요한 물이 부족해 에너지 공급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세계 3대 경제권이 극심한 가뭄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다. 앞서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폭염와 같은 기후재난이 겹치며 식품 및 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리는 모양새다. 농업을 시작으로 전력·제조업·관광업 등 산업 전반에 걸쳐 피해가 나타나 글로벌 공급망에 비상이 걸렸다.
우선 가뭄에 직격탄을 맞은 건 농업이다. 지난달 스페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가격은 약 7% 상승했다. 섭씨 40도 전후의 폭염이 이어지면서 수확량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뭄이 지속되면 수확량이 평년 대비 3분의 1까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뭄으로 강바닥이 드러나면서 물류 마비 위기를 빚거나 수력 발전량이 줄어드는 모습도 나타난다. 유럽 무역의 주요 길목인 독일은 라인강과 이탈리아 포강의 하천 수위가 유례없이 낮아진 상태다. 평소 라인강의 수심은 3~6m 달하지만 최근엔 1.9m 정도로 얕아졌고, 좌초 우려가 커지자 물동량도 줄었다.
에너지 위기도 가속화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내륙 수량 감소로 수력 발전량이 줄면서 러시아산 천연가스 탈피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프랑스는 수온이 높아진 탓에 강물이 원자력발전소 냉각수 역할을 못 하게 되자 발전량을 줄였다.
미국에서는 옥수수와 대두 수확을 본격적으로 개시했지만 가뭄 영향으로 정부 예상보다 수확량이 낮아 식량난 해소에 충분치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 국가환경정보센터(NCEI)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전역 기온은 역사상 3번째로 기온이 높았다.
이미 올해 미국의 면화 생산량은 전년 대비 28% 줄었다. 미 농무부(USDA) 분석에 따르면 미국 목화 생산지의 66%가 가뭄을 겪고 있는데,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농민들이 면화 재배를 포기하면서 수확량이 40%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면화 가격은 급등하기도 했다.
중국 역시 연일 섭씨 40도를 넘는 기온을 기록하며 1961년 이후 최악의 폭염에 처해있다. 쓰촨·충칭·후베이성 등 중국 전역에 걸쳐 215만ha(헥타르)의 농작물이 가뭄으로 피해를 봤으며 '젖줄' 양쯔강의 일부 유역은 아예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가뭄은 제조업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난을 겪자 중국 쓰촨성 공장은 15일 전력난 해소를 위해 6일간 대부분의 공장에 폐쇄 명령을 내렸다. 쓰촨성에는 반도체, 리튬과 태양광 배터리 공장이 밀집돼 있는데, 이로 인해 신에너지차 산업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재난은 하반기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4일 국제금융센터가 발간한 '최근 글로벌 폭염 확대에 따른 세계 경제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경제 성장에 있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북미 일부 지역, 유럽, 아시아등 중위도 지역에서의 폭염이 심해지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폭염 현상은 ▲물류 차질 ▲전력 부족 ▲생산 차질 ▲식량 부족의 리스크를 더욱 확대해 세계 경제 성장에 추가적인 하방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서 폭염을 비롯한 이상기후 문제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라면서 "이에 따라 이번 폭염과 같은 다양한 이상기후가 세계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계속 커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