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서울 성북구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최근 전세로 살던 주택이 압류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주택자인 집주인 B씨가 종합부동산세 폭탄을 맞으며 세금을 내지 못하자 세무 당국이 이들 주택을 모두 압류하기로 한 것이다. 입주 후 불과 반년이 되지 않은 상태라 전세 계약 끝나는 날이 한참 남은 그는 집주인의 부동산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말에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A씨의 사례처럼 최근 ‘깡통전세’로 전세보증금 반환에 위협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세금폭탄을 맞은 다주택자들이 돈을 돌려줄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종부세, 재산세 등 당해세의 경우 보증금보다 선순위인 경우가 많아 해당 주택이 경매로 낙찰됐다 하더라도 보증금을 완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가 빈번하다.
11일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임차인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신청한 강제경매 진행 건수는 총 983건이다. 지난해 상반기(659건)보다 약 324건(49%) 늘어난 셈이다. 이 중 빌라(연립·다세대 주택)는 493건으로 지난해 상반기 291건 보다 202건(69.4%) 증가했다. 아파트의 경우 같은 기간 286건에서 316건으로, 주상복합은 82건에서 174건으로 늘었다.
이처럼 강제경매가 이어지자 전세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 액수도 커지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사고 금액은 올 상반기(1~6월) 3407억원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2512억원과 하반기 3278억원을 넘어선 금액이다.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상품은 현재 HUG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 SGI서울보증에서 취급하고 있다.
지난달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사고 금액(건수)은 872억원(421건)으로, 금액과 건수 모두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최다인 것으로 집계됐다. 집주인이 계약 기간 만료 후에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이들 기관이 가입자(세입자)에게 대신 보증금을 지급(대위변제)해주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해 집주인에게 청구한다.
통상 전세가율이 80%가 넘는 깡통주택은 집주인이 주택담보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면 경매로 넘어가고 낙찰되면 대금 중 일부를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준다. 문제는 전세가격이 매매가를 넘을 경우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조차 가입할 수 없어 피해가 커진다는 점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최근 매매가격은 떨어지고 전세가는 오르면서 전국의 40% 가까운 주택들이 전세보증금을 떼일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임차인이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집주인이 종부세, 재산세 등 당해세를 체납한 경우라면 전세보증금은 이들보다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국세기본법에상 국세는 다른 채권에 우선해 징수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채권 등 채무관계가 복잡한 주택은 경매에서도 수차례 유찰될 확률이 높다. 유찰이 거듭될수록 경매시초가도 떨어져 낙찰가격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중에 세금을 빼고 나면 전세보증금으로 돌아오는 돈은 사실상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조세영 법무법인 로윈 변호사는 “이와 같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물건을 찾아 계약하는 것이 안전하다”라며 “만약 보증보험을 통해 반환받을 수 없다면 경매를 통해 주택을 낙찰 받는 등 서둘러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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