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서희 기자] 지난 5일 47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도 이천시 병원 건물 화재 사고를 계기로 스크린골프장이 '방재(防災)'의 사각지대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사고의 최초 발화지인 스크린골프장에 간이 스프링클러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1일 아시아경제 현장 취재 결과 서울 등 수도권 일대 소규모 스크린골프장이나 실내골프연습장 중 상당수가 스프링클러, 자동확산소화기 등 방화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스크린골프장에는 업종 특성상 인조잔디, 소파 등 가연성 물질이 많이 비치돼 있다. 여기에 각 방의 배치가 고시원과 흡사한데다 별도의 창이 없는 공간이 많아 이용객들이 화재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자가 방문한 서울 서초구의 한 실내골프연습장의 경우 3개의 연습실을 갖추고 있었다. 각 연습실은 독립적인 스크린골프 시스템이 마련돼 있었고 바닥은 인조잔디가 깔려 있다. 각 방에는 연습 중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소파도 눈에 띄었다.
문제는 이 공간들이 별도의 벽이 아닌 벨벳 재질의 커튼으로 구획돼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벽 대신 커튼으로 연습실을 구획한 이유는 소방 설비 설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편법이다. 벽으로 구획할 경우 각 방마다 필요한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지만 인허가때 하나의 공간으로 인정받으면 그만큼 비용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다중이용업소에 해당하는 영업장은 소방 설비를 내부에 구획된 ‘실’마다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골프연습장업(스크린골프장)은 면적 규모에 관계없이 다중이용업소에 해당돼 이 규정을 적용받는다.
이 법에서 규정한 '안전시설 등의 설치·유지 기준'을 보면 영업주는 소화기나 자동확산소화기, 비상벨 설비 또는 자동화재탐지설비, 유도등, 비상조명등 등을 각 분리된 공간마다 하나씩 둬야 한다. 영업장 내부 구획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설치해야 하는 소방 설비 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소규모 스크린골프장일수록 이같은 규정을 피한 편법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프랜차이즈 스크린골프장의 경우 본사의 엄격한 관리 규정 때문에 상대적으로 낫지만 영세한 소규모 업소는 비용 절감을 위해 규정을 피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법이 규정한 관련 소방 설비를 갖추려면 각 실당 최소 10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종로구에서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는 최모(43)씨는 “영세한 곳에서는 벽 대신 커튼을 설치하는 식으로 설치 비용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벽체 구분에 관계없이 각 실마다 최소한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미승인 방염 제품 사용 여부에 대한 단속과 주기적인 점검도 강화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스크린골프장에 설치하는 시설물은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 인증을 받은 제품을 설치해야 하지만 소규모 영업장에는 미인증 제품을 사용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KFI의 인증을 받은 제품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제품의 방염 효과가 떨어지는 탓에 주기적인 점검도 반드시 필요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염 처리한 제품도 3년 정도 사용하면 방염 효과가 떨어진다"며 "주기적인 점검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선 스크린골프장 업계는 영세 사업장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이같은 규정을 지키기 쉽지 않은 만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안양시에서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는 이모(37)씨는 “정부가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상과 규모가 제한적"이라며 "안전을 위해서라도 혜택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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