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수미 기자] 지구촌 곳곳이 기후 변화에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북반구가 폭염에 푹푹 찌는 사이 한겨울로 접어든 남반구는 홍수와 폭설 피해가 속출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에너지 대란으로 세계 각국의 화석연료 사용량이 되레 증가하면서 기후 위기가 심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2일(현지 시각) AFP 통신에 따르면 최근 남미 칠레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의 로스 안데스 지역에 눈보라가 몰아쳤다. 갑작스러운 폭설과 영하의 날씨에 교통이 마비됐고, 많게는 1m 이상 눈이 쌓여 한때 400여명의 발이 묶였다.
상황 수습을 위해 투입된 칠레 재난 당국과 군경은 고립됐던 이들을 구조하는 한편 중장비를 동원한 제설 작업 등을 통해 약 2주 만에 차량 운행을 정상화했다.
특히 이번에 폭설이 내린 발파라이소 지역은 7월 평균 기온이 영상 7∼13도 정도인 곳으로 알려졌다. 평소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이례적인 폭설이 내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상 기온이 한동안 계속되면서 일어난 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남반구 나라인 호주에서는 홍수로 큰 피해가 발생했다. 호주 ABC방송 등 현지 언론은 이달 초부터 동부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 폭우와 홍수가 발생해 3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또 호주 기상청에 따르면 시드니 북쪽 뉴캐슬과 남쪽 울런공 사이 일부 지역에서는 24시간 동안 1m가 넘는 비가 내렸다.
반면 미국과 유럽 등 북반구는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CNN 방송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영국 기온은 역대 최고인 40.3도로 치솟았다. 이날 폭염으로 런던 루턴 공항 활주로에 문제가 생기면서 항공기 운항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땡볕에 노출된 철로가 뒤틀리는 일도 발생했다. 런던 교통 당국은 공지를 통해 "철로 온도가 48도를 넘어섰다"며 "뜨거워지지 않도록 흰색 페인트로 철로를 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땅속에 묻은 수도관이 파열됐다. 텍사스주 포트워스시는 고온과 가뭄으로 지반이 움직이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시에서 발생한 수도관 파열 사례 476건 가운데 221건이 최근 90일 사이에 생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는 40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7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탈리아 보건부는 이날 로마와 밀라노를 포함한 14개 도시에 폭염 경보를 발령했다. 또한 이탈리아 카루소 인근에서 폭염과 가뭄 여파로 발생한 산불이 국경을 넘어 슬로베니아까지 확산해 2000ha가 넘는 지역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9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연합(EU) 산하 지구 관측 기관 코페르니쿠스를 인용해 지난달 유럽 대륙 전체 기온이 예년보다 1.6도 높아 6월 기온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은 오히려 후퇴하는 모양새다. 당초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미국과 EU 등은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탄소 배출의 주범인 석탄 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합의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유럽, 중국 등 세계 경제 대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천연가스와 석유 부족 등 에너지 위기 여파로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때 이른 폭염을 겪은 뒤 석탄 발전량을 늘렸다.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인 중국도 충분한 전력공급 능력 확보를 위해 석탄 생산과 발전을 확대하는 추세다. 인도 역시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면서 석탄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WSJ은 연소 시 천연가스보다 이산화탄소를 2배가량 배출하는 석탄의 부활이 이번 세기말까지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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