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원 기자] '내가 뭘 꺼내려고 했더라.'
식사를 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던 어느 날, 김정숙(가명)씨는 빈손으로 냉장고 문을 닫아야 했다. 문을 열기는 했는데, 무엇을 꺼내야 할 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건망증인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자 불안감이 커졌다. 딸의 손에 이끌려 대형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김 씨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늙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 가운데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치매다. 기억력을 잃는 것은 물론,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져 자녀 등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치매는 고령자가 겪는 대표적인 뇌 질환으로, 국내 80세 이상 노인 10명 중 3명은 치매를 앓고 있을 정도로 노인에게 흔히 발생한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어 앞으로 치매 환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형 치매는 원인이 명확히 규명돼 있지 않고 완치가 불가능해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2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는 82만9227명으로 이 연령층의 10.2%에 달한다. 80세 이상으로 대상을 좁혀 보면 총 189만5712명 중 28.3%(53만6708명)가 치매 환자다. 노인 치매 환자는 앞으로도 늘어나 2050년에는 302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추정 노인 인구수 대비 비율은 15.9% 정도다.
특히 치매의 경우 여성 환자가 남성 환자의 2.5배에 달한다. 2020년 전국 치매 환자 중 여성 비율은 71.2%(64만8783명), 남성은 28.8%(26만2746명)이다. 한국 치매 환자 10명 중 7명은 여성인 셈이다. 이 같은 원인은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긴 것을 원인 중 하나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의 기대수명은 여성이 남성보다 약 6년 긴 86.5세다.
치매 판정을 받지 않았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치매의 전 단계로 불리는 경도인지장애가 진행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 보건복지부의 치매안심통합관리시스템(ANSYS)에 등록된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13만4227명이다. 경도인지장애는 치매처럼 기억장애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인 ‘기억성 경도인지장애’로 가장 많이 나타난다. 대한치매학회에 따르면 정상인 사람은 매년 1~2%가 치매로 진행되지만, 기억성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10~15%가량이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치매가 사망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치매 사망률은 2009년 11.8명, 2013년 16.9명, 2020년 20.7명으로 증가했다. 알츠하이머병은 국내 사망원인 7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하는 세계 사망원인 순위에서도 알츠하이머와 기타 치매가 7위를 기록했다.
보통 치매로 통합해서 부르지만, 치매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알츠하이머형 치매와 혈관성 치매, 흔히 알고 있는 알코올성 치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발생하는 치매가 바로 알츠하이머형 치매다. 중앙치매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65세 이상 추정치매환자 중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는 75.5%에 이른다. 원인이 되는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뇌세포가 퇴화되며 기억력 등 인지 기능을 점차 저하시키는 질환이다. 1907년 이 병을 처음으로 발견한 독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다만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는 일반인보다 크기가 작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뇌 조직에서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침착된 노인반과 타우 단백질이 엉겨붙으며 만들어진 신경섬유다발이 발견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성질들로 인해 신경세포가 죽으며 알츠하이머가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 현상이 생기는 원인은 찾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로 환자가 많은 치매인 혈관성 치매는 전체 환자의 8.6%가량을 차지한다. 뇌의 혈액공급 문제로 발생한 치매로, 뇌혈관 질환이 원인이 된다. 이때 뇌혈관 질환의 종류나 크기, 위치에 따라 증상과 경과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이밖에 습관성 음주로 인한 알코올성 치매와 루이 소체 치매, 전두 측두엽 치매 등이 있다.
치매 유형에 따라 치료도 다르게 진행된다. 최성혜 인하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의 원인이 수십 가지인데,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알츠하이머"라며 "알츠하이머의 경우 아직 완전히 진행을 멈추게 하는 약은 한계가 있는 등 치료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반면 혈관성 치매는 원인 질병을 해결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최 교수는 "뇌출혈이나 뇌경색 등 뇌졸중의 재발을 막으면 진행을 멈출 수 있다"며 "치료가 어려운 알츠하이머병이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보통 모든 치매가 치료가 어렵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 환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비단 국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는 뇌 관련 질환에 따른 치매를 겪는 사람을 550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WHO는 2030년에는 치매 환자가 40% 증가한 7800만명, 2050년에는 1억39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알츠하이머협회 최고 과학책임자 마리아 카릴로 박사는 지난해 알츠하이머 국제 콘퍼런스(AAIC)에서 "선진국 및 다른 지역의 교육 접근성 확대, 심장 건강 관심 상승, 생활양식 개선 덕에 최근 치매 발병률이 낮아졌지만 총 치매 환자는 인구 고령화 탓에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젊은 사람들도 비만 혹은 당뇨를 앓거나 오래 앉아 있는 경우가 빠르게 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치매 위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저소득 국가는 높은 치매 유병률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게 치매 대응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WHO는 세계 치매 환자의 60% 이상이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 살고 있지만, 치매에 대한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답한 대부분의 나라가 고소득 국가라고 지적했다. 저소득 국가는 고소득 국가에 비해 간병인 등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기보다 가정에서의 비공식 돌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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