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임대차법 2년, '전세공포'의 역설

조강욱 건설부동산부장

조강욱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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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전세사기 유형을 상세히 분석하고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경찰에 전세사기 전담반을 구성하는 등 전세사기 범죄를 강력히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20일 열린 제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전세사기 엄정 대처 방침을 밝힌 것이다. 또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된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의 개정 필요성도 재차 제기했다.


앞서 지난 11일에는 서울중앙지검이 100명이 넘는 임차인을 속여 300억원에 가까운 전세금을 가로챈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의 주요 피의자 3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무자본 ‘갭 투자’(집값·전세값 차가 적은 주택을 매입한 뒤 전세금을 올려 차익을 노리는 투자) 방식으로 빌라 등 수백 채의 다세대주택을 취득한 뒤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금을 매기는 ‘깡통전세’ 수법으로 세입자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주범인 무자본 갭 투자자 김씨와 분양대행업자 대표 A씨, 분양팀장 B씨는 건축주에게 줄 금액(입금가)에 자신들이 나눠 가질 ‘리베이트 금액’을 얹는 방식으로 분양가를 높게 산정했다. 이후 업자들은 분양가를 부풀린 사실은 숨긴 채 공인중개사를 통해 실분양가보다 높은 전세가로 임차인들과 계약하는 수법을 썼다. 빌라 소유권까지 취득한 김씨는 이후 136채의 빌라 소유권을 자신의 30대 두 딸 명의로 이전하기도 했다.


세입자가 원하면 전·월세 계약을 연장해 최대 4년 거주를 보장하고 임대료 상승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이 오는 31일로 시행 2주년을 맞는다. 당시 국회는 세입자 주거 안정이란 명분을 내세워 법 통과 바로 다음 날부터 긴급 시행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세밀한 법안 검토 없이 바로 시행되다 보니 이에 따른 부작용이 상당하다. 법 조항의 허점 때문에 특히 계약갱신청구권을 두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극심해졌고, 관련 소송과 분쟁으로 번졌다. 2019년 182건이던 관련 조정 건수는 2020년 270건, 2021년 585건으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집값이 본격적인 조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비싼 이른바 ‘깡통전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집값 하락세가 뚜렷했던 대구와 대전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수도권까지 확산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돌려받지 못한 전세 보증금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6월 말 기준) 발생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는 1595건으로, 피해금액은 3407억원으로 집계됐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최근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 사고 금액은 2019년 3442억원, 2020년 4682억원, 2021년 5790억원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월세상한제의 영향으로 갱신 계약했던 임대차 물량이 내달부터 다시 시장에 풀리기 시작한다. 이 매물들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건 전셋값은 이미 크게 올랐다는 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3315만원으로 임대차법 시행 직전인 2020년 6월(4억6224만원)과 비교하면 1억7091만원(37.0%) 상승했다. 세입자 주거 안정이란 명분으로 시행된 임대차법이 오히려 전세불안을 넘어 공포를 야기시키는 역설을 낳은 셈이다. 올 하반기 연이은 금리인상과 함께 ‘깡통전세’ 문제가 불거지면서 부동산 ‘영끌족’과 전월세 세입자 모두 사면초가 상황에 몰렸다. 끊어진 주거의 기회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약속이 부디 너무 늦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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