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기초과학 강국 일본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다. 정년을 보장해주던 예전과 달리 과학자, 연구자, 대학교수들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장기적ㆍ안정적 연구가 불가능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일본은 2013~2014년 사이에 대학, 연구소 등에서 일하는 계약직 연구자들이 10년 이상 일할 경우 정규직 고용을 요구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명분은 장기적, 안정적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고용 보장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내년 4월부터 해당 법률의 적용을 받아 기간제 계약직 연구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의 대학, 연구소들이 10년이 되기 전 해당 연구자들과의 계약을 파기하거나 사직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네이처에 따르면, 내년 4월부터 일본 국립 대학ㆍ연구소들 수십 곳에서만 약 3100명의 연구자들이 10년 계약 기간이 종료될 예정인데, 이들 중 일부만 정규직으로 고용될 수 있을 뿐 많은 이들이 결국 일자리를 잃게 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일각에선 약 4500여명의 연구자들이 내년 4월 이후 이같은 상황 때문에 실직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연구자들의 대량 실직 사태가 현실화될 경우 일본 과학 기술 연구에는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미 일본은 2003년 이후 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 상태다. 10년 장기 계약 후 정규직 전환이 불가능하게 되면 더 줄어들어 일본 기초과학 연구의 동력이 될 인력 수급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일본 과학계 한 관계자는 "만약 10년 고용 계약 후 정규직화가 무산돼 고용이 불안정해진다면 장기적으로 일본 과학 연구 역량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다"고 우려했다.
이미 일부에선 연구자들의 실직이 가시화된 상태다. 최근 한 대학 연구자는 학교 측으로부터 퇴직을 통보받은 상태다. 일본의 대표적 연구 기관인 이화학연구소(RIKEN) 노조도 자체적인 조사 결과 203명의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상황이며, 42개 연구팀이 폐쇄되면서 연쇄적으로 177개의 연구 관련 일자리들도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연구자는 네이처에 "그동안 정말 무지막지한 초과 근로를 무급으로 해왔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면서 "이런 상황은 엄청난 신뢰의 상실"이라고 비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