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월요일 아침 출근길 A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시 웃음꽃이 핍니다. 한 중년이 홍보실 B차장에게 "김밥차석, 출근해?"라는 인사를 건넸기 때문이지요. 모두 웃었지만 당사자인 B차장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동료의 인사는 위로에 가깝지만, 저 웃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속사정도 모르고 '꼰대'라고 비웃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B차장은 얼마 전에 방송된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홍보실 막내 직원이 '김밥 심부름을 시킨 차석'로 언급한 이후 그의 별명은 '김밥차석'이 됐습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인 막내직원 C씨('93년생)와 D대리('87년생)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각각 MZ세대 직장인과 구세대 직장인 사이에 낀 세대 직장인으로 출연해 각자의 입장을 밝히게 됩니다.
방송에서 C씨는 몇달 전 D대리가 40분에 걸쳐 김밥을 사온 사건을 예를들며 "밑에 사람은 또 그런 경우가 있으면 해야 된다"면서 김밥 심부름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했지요. 이에 대해 D대리는 "차석이 개인카톡을 보내 부탁을 했고, 자신이 가지 않으면 막내가 가야 해서 자신이 간 것"이라고 해명합니다. 그러나 다른 출연진에 의해 '상사에게 아부하기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대리'로 농담의 대상이 됐고, D대리는 "김밥 심부름 좀 해주면 어떠냐"고 다시 항변하지만 C씨는 "한번 해주면 그걸 두 번 세 번 또 해줘야 한다"면서 부정적 견해를 굽히지 않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MZ세대가 생각하는 직장생활의 일면이 솔직하게 표현됩니다. C씨는 "휴일에는 카톡방을 확인하지 않는다"고 했고, 다른 한 출연자는 "출근시간은 회사에 도착해서 일하는 시간부터가 아닌, 집에서 출근을 준비하는 그 시간부터"라고 주장하기도 했지요.
방송에 출연하면서도 홍보실 직원인 C씨가 B차장이나 팀장에게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사내에서 지적이 됐지만 C씨는 "휴일에 녹화했고, 휴일 활동이라 회사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방송이 나간 이후 B차장은 "보고를 하지 않은 점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C씨에게 알려줬지만 "진심으로 잘못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기자가 B차장에게 '김밥 심부름을 왜 시켰냐'고 물었습니다. "그날따라 더 바쁜 팀장에게 '아침이라도 드셨냐'고 했더니 '밥먹을 시간도 없다'고 해서 급히 김밥 심부름을 시킨 게 실수였다"는 게 B차장의 반성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자신이 직접 갔을텐데 팀장과의 업무 때문에 D대리에게 부탁한 것이 다른 직원들에게는 꼰대스럽게 보였던 것이지요.
결국 B차장은 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꼰대' 인증을 받았고, 부서 분위기는 전보다 안 좋아졌습니다. B차장은 "직원들에게 지시할 때 업무 연관성을 더 꼼꼼하게 따지게 됐다. 왠만하면 직접 처리하려 한다"면서도 "꼰대 소리 듣더라도 일은 시켜야 한다. 직원들이 본질적인 업무에 더 집중해주면 좋겠다"고 털어놓습니다.
여러분의 직장에서라면 B차장은 어느 등급쯤 될까요? 방송과 달리 어떤 회사에서는 그 정도면 '우수' 취급을 받을 수도 있고, 다른 회사에서는 '최악'의 기피인물이 될 가능성도 있겠지요.
그날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는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친목도모를 위해 모인 곳이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협동과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시간을 갖고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 내에서도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만큼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 간의 소통은 아주 중요한 문제"라면서 "더 많은 대화와 소통의 자리가 필요한데 이를 회식 등 기존의 방식, 위계적 방식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직급·직위별 세부 소통프로그램을 개발·시행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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