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박진형 기자] "도로교통법 제27조 1항 위반하셨습니다. 면허증 좀 주세요."
보행권이 강화된 도로교통법 개정안 시행 첫날인 12일 광주광역시 북구 샛터코아 사거리. 북부경찰서 교통경찰관 4명이 현장에 나와 날카로운 눈초리로 횡단보도 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보행자가 '통행하려고 할 때' 차량이 불법 우회전을 하는지 계도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는 '통행 중'일 때만 운전자에게 일시 정지 의무가 부여됐다가 이날부터 확대됐다.
'통행 중'은 이미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통행하려고 할 때' 일시정지 의무를 위반한 운전자에 대해서는 한 달 간 계도 기간을 갖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경찰의 눈매가 한층 매서워졌다.
보행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자 2~3명 시민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그때였다. 하얀색 트럭이 대천로에서 서하로 방면으로 우회전을 시도하다가 경찰 감시망에 딱 걸린 것이다.
보행자가 건너고 있을 때는 횡단보도 선을 지나기 전에 정차해야 하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갓길에 차량을 세운 운전자 나모(59)씨는 신분증을 제시한 뒤 단속에 불만이 가득하다는 듯이 곧바로 창문을 올려버렸다.
경찰이 교통단속 휴대용정보단말기(PDA)를 꺼내 들고 인적사항과 차량 소유주 등을 확인한 뒤 가상계좌를 발부할 때까지 잠시 기다린 후 다시 출발했다. 나씨는 범칙금 6만원과 벌점 10만원을 부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더욱 아찔한 상황이 연출됐다.
한 승용차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다수의 보행자를 무시한 채 우회전 후 직진 운행을 시작했다. 교차로에 진입하면서 속력을 줄였지만 불과 몇 걸음 거리에는 시민들이 있었다.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운전자는 "관련 법을 몰랐다"고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범칙금 납부고지서를 받아들고 떠났다.
맞은편 길에선 경찰 단속을 버젓이 무시하고 또 다른 승용차가 횡단보도를 밟은 채 정차했다. 보행자의 안전한 통행을 방해하고 있던 것이다. 경찰은 이를 보더니 "불법"이라고 말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려고 하는 때' 일시정지, 보행자 우선도로와 도로 외 구역에서 보행자의 통행우선권 보장, 어린이보호구역 내 무신호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통행 여부와 관계없이 일시정지 의무 등 내용이 담겨 있다.
이날 경찰은 개정안 시행에 따라 새롭게 추가된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 사항을 홍보하려고 현장에 나왔다가 기존 법규 내용을 위반한 운전자만 단속하다가 끝났다.
해당 법이 만들어진 1961년부터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차량이 우회전을 하면 안된다. 그때는 제27조가 아닌, 제44조에 규정돼 있었다.
하정주 교통안전팀장은 "당분간은 현장 혼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적극적인 계도 및 홍보 활동을 통해 법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운전자들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인식 하에 좌우를 살피며 교통 법규를 잘 지켜주길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2916명으로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보행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은 34.9%로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9.3%보다 1.5배가량 높아 보행 안전이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