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미국 연방대법원이 약 50년간 헌법으로 보장했던 낙태권을 폐기한 데 이어 이번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온실가스 규제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놨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청정 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겠다던 바이든 대통령의 기후변화 대응 로드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뒷걸음질칠 것이란 우려도 잇따른다. 기후변화 리더십을 자청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공급난으로 인해 좀처럼 기후변화 대응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미국 대법원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6대 3으로 석탄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방출을 제한하려는 정부의 계획을 불법적 권한 남용이라고 판결했다. 환경청(EPA)이 석탄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방출을 광범위하게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판결의 골자다.
존 로버츠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전국적으로 전기 생산에 석탄이 사용되지 않을 정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배출을 제한하는 것은 현재 위기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일 수 있다"면서도 "그 정도 규모와 파급력이 있는 결정은 의회가 하거나 의회의 명확한 임무를 받은 기관이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2030년까지 전국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한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에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그간 바이든 행정부는 의회가 교착 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정책 어젠더를 진전시키기 위해 입법 대신 규제를 활용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현재 전체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30%는 발전소에서 나오고 있다.
이날 판결은 보수 성향으로 확연히 기운 대법관의 분포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대법원은 연방 차원의 낙태 권리를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등 보수 성향의 판결을 쏟아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법원이 바이든 행정부의 환경의제를 뒤집었다"면서 "의회의 명확한 권한 없이 행동하는 바이든 행정부에 너무 많은 권한이 부여된다는 보수파의 견해를 강화시킨 것"이라고 보도했다. 9명으로 구성된 대법관은 보수 6 대 진보 3의 성향을 띠고 있다. 또한 보수 성향 6명 중 3명은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결정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임명된 인물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공약으로 앞세웠던 바이든 행정부로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서명한 여러 건의 행정명령 중 파리협정 복귀를 포함했을 만큼 기후변화 대응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올 들어 바이든 대통령에게서 나오는 기후변화 대응 메시지는 확연히 줄었다. 국내적으로는 치솟는 인플레이션 등 경제 이슈가, 국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의 부상 등이 주요 의제가 된 탓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공급난은 오히려 각국이 화석연료에 다시 눈을 돌리게 하고 있다. 앞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한 공공자금 조달 등이 논의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가운데 리더십을 자청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발목잡히면서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힘이 빠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이번 판결로 바이든 행정부의 규제 수단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백악관은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법에 따라 부여된 권한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PA 역시 "EPA 권한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고 온실가스 배출 규제 외 다른 도구가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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