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의료의 핵심 가치가 점차 변화하는 시기잖아요. 인공지능(AI) 문진 알고리즘을 통해 새로운 의료 생태계를 조성해보고자 합니다."
몸 어딘가가 불편해 병원을 가긴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가 종종 있다. 의료 전문가가 아닌 이상 대다수의 환자는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등 여러 진료과를 그저 유추해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일단 동네병원을 갔다가 담당 진료과가 아니라 다른 병원을 가거나 큰 병원에 가야 한다며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맞닥뜨린다. 이럴 경우 진료를 받는 시기가 늦어지고, 그 사이 병을 키울 수도 있다.
2018년 11월 처음 출시된 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비플러스랩(Be+LAB)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어디아파’는 이 같은 환자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AI 문진 알고리즘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사용 방법은 굉장히 간단하다. 앱을 실행시킨 뒤 AI 문진을 누르고 이름과 생년월일, 키, 몸무게, 혈액형 등 기본적인 건강정보를 입력하고 어떤 증상이 있는지 검색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허리 통증’을 입력하면 발생한 기간을 먼저 물어보고, 현재 아픈 부위를 선택하게 된다. 이전 병력과 통증 정도, 통증이 시작된 계기, 주요 증상 등에 대해 답하면 AI 알고리즘을 통해 3가지 정도의 예상질환을 알려준다. 예측되는 병명을 누르면 질환의 정의와 발병률, 증상과 원인, 진단 및 치료 방법은 물론 추천 진료과와 주변 병원까지 소개한다. 정훈재 비플러스랩 대표는 "병원에서 의사들이 문진하는 로직을 그대로 AI 문진 알고리즘에 반영했다"며 "현재는 주증상 120~130개, 세부질환 1300~1500개를 안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본업은 의사다.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동안 서울부민병원 병원장을 지냈다. 20년 가까이 의료현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그가 디지털 헬스케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현장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정 대표는 "병원이 가지고 있던 진단, 치료라는 핵심 가치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희석되고 있음이 느껴졌다"면서 "병원이라는 철저히 보수적인 공간을 넘어 환자와 연결하는 과정의 불편함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디아파에는 이러한 정 대표의 고심이 담겨 있다. 어떤 증상이 있는데 어떤 병인지 모르는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 AI 문진 알고리즘 개발로 이어졌다. 정 대표는 AI 문진 알고리즘이 환자는 물론 의료진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의료라는 활동의 최초 시작점이 문진"이라며 "미리 알고리즘을 통해 문진을 마쳤다면 그 환자에 대해 의사가 미리 예습한 것과 같고, 짧은 시간에도 더욱 좋은 진단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과 AI 문진을 연계해 차팅 부담 등도 줄일 수 있고, 다양한 의료 데이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정 대표는 오는 9월 AI 문진을 활용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이다. 기존의 전화, 화상 방식으로는 환자와 의료진의 적절한 연결부터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AI 문진 알고리즘으로 주요 증상 등을 사전에 확인한다면 보다 적합한 의료진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정 대표는 "우리나라의 의료 정책 시스템이 좋긴 하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고품질 의료를 제공하는 형태로 지속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라며 "IT 데이터를 통해 의료서비스 비용을 줄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궁극적으로는 만성질환 등 진료·처방·예방·관리·교육까지 아우르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디지털 헬스케어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협업과 연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근 별도의 벤처캐피털(VC)을 창업한 이유다. 정 대표는 "헬스케어 생태계에는 정말 다양한 플레이어와 플랫폼이 있다"면서 "좋은 업체들에 대한 투자와 육성을 통해 빈 공간을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렸다. 그러면서도 공공성의 중요성을 빼놓지 않았다. AI 문진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의료 생태계가 의료 접근성 문제 해소와 만성질환자의 의료비 감소 등 효과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정 대표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음식을 배달하거나 택시를 부르는 플랫폼과 똑같이 생각해선 안 된다고 본다"며 "3차병원 쏠림현상 등 현재의 의료전달체계 문제 해결과 국가적 의료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