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학교안전공제중앙회(공제중앙회)가 학교배상책임공제에 따라 지급한 공제금은 가해자 측 보험사에 전액을 구상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앞서 대법원은 2019년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학교안전법)상 전국의 학교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학교안전공제'와 관련된 사건에서 공제중앙회가 학교안전공제에 따라 공제금을 지급한 뒤 가해자가 가입한 보험사에 전액을 구상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처럼 법적으로 가입이 강제된 학교안전공제와 학교배상책임공제는 법적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학교배상책임공제에 따라 지급한 공제금은 상법상의 '공제' 규정에 따라 자신의 부담부분을 넘는 범위에서만 구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공제중앙회가 DB손해보험과 KB손해보험을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제금 전액에 대해 피해자를 대위해 피공제자의 책임보험자인 피고들에게 보험금 직접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원심은 학교배상책임공제 제도와 변제자대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2015년 11월 4일 오후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A군은 경기도 김포시의 한 인도에서 축구 동아리 수업을 위해 26명의 학생과 함께 공원 축구장으로 이동하던 중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피해자 B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왼쪽 어깨로 부딪쳤다.
A군과 부딪친 충격으로 뒤로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B씨는 20주간 치료가 필요한 외상성 뇌주막하 출혈, 뇌경색 등 상해를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2018년 3월 22일 결국 사망했다.
B씨 측은 A군의 부모, A군 측이 가입한 2개 보험사, A군이 재학 중인 학교의 설립·운영 주체인 경기도, 공제중앙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2019년 2월 2심에서도 B씨 측이 승소하자 공제중앙회는 B씨의 유족에게 1억원을 지급했다.
이후 공제중앙회는 A군 측이 가입한 2개 보험사에 약관상의 '보험금의 분담' 규정에 따라 각 6억6666만원과 3억3333만원 및 이에 대한 이자를 구상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학교안전공제'가 공제금 전액을 가해자의 보험사에 구상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학교배상책임공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가 쟁점이 됐다.
앞서 1심과 2심은 공제중앙회가 학교배상책임공제로 이미 지급한 공제금도 전액을 가해자 측 보험사에서 받아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공제중앙회는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채무를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로서 민법 제481조의 변제자대위 규정에 따라 피해자의 보험금 직접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고, '학교안전공제회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공제급여의 범위에서 가해자의 책임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의 법리는 학교안전공제와 유사한 사회보험인 학교배상책임공제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는 이유였다.
민법 제481조(변제자의 법정대위)는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는 변제로 당연히 채권자를 대위한다'는 규정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 판단을 수긍하기 어렵다며 공제중앙회의 손을 들어준 2심 판결을 파기했다.
법적으로 가입 의무가 부과되는 학교안전공제와 일종의 수익사업인 학교배상책임공제는 법적 성격을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재판부는 앞선 대법원 판결을 원용해 "학교안전공제는 상호부조와 사회보장적 차원에서 특별법으로 창설된 제도이다"라며 "이러한 사회보장적 성격을 가진 공제급여로 가해자의 책임보험자가 자기의 보험금지급 의무를 면하는 이익을 누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학교안전공제회는 피공제자인 피해자에게 공제급여를 한 다음 그 범위에서 피해자의 보험금 직접청구권을 대위행사함으로써 지급한 공제급여 상당액을 가해자의 책임보험자로부터 회수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인용해 "원고(공제중앙회)는 교육부장관이 학교안전사고 예방정책의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 학교안전공제 급여의 지급기준 등에 대한 조사·연구 등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법인이다"라며 "원고는 학교안전공제회와는 별도의 독립된 법인으로 설립 주체와 목적이 다르고 학교안전공제회의 상급기관이나 지휘·감독기관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학교배상책임공제는 학교안전공제와 달리 학교안전법이 창설하고 직접 규율하는 제도가 아니다"라며 "학교안전법과 시행령을 근거로 공제중앙회가 '수익사업'의 일종으로 학교배상책임공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제급여의 내용은 원고가 마련한 공제약관으로 정해지고, 학교안전공제처럼 피공제자 본인의 생명·신체에 생긴 손해를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피공제자가 제3자에 대해 부담하게 된 손해배상책임에 관해 공제급여를 지급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학교배상책임공제는 학교안전법에서 직접 창설·규율하는 학교안전공제와는 법적 성격이 다른 점, 관련 법령의 규정 취지, 학교배상책임공제 사업의 근거와 내용, 공제계약 체결의 과정, 공제급여의 대상 등을 고려해 볼 때 학교배상책임공제는 상법 제664조에 규정된 '공제'로서 상법의 보험편 규정이 준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법 제664조(상호보험, 공제 등에의 준용)는 상법 제4편 보험에 있는 규정들을 그 성질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상호보험이나 공제 등에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따라서 원고는 학교배상책임공제에 따라 피해자에게 공제금을 지급한 경우에 학교안전법에 따라 수급권자를 대위할 수 있는 학교안전공제회와 달리 가해자인 피공제자의 책임보험자에게 피해자의 보험금 직접청구권을 대위행사할 수 없고, 책임보험자와 중복보험의 보험자 관계에서 자기의 부담부분을 넘어 피해자에게 공제금을 지급했을 때에 책임보험자의 부담부분에 한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학교배상책임공제에 따라 공제금을 지급한 공제중앙회는 가해자 A군이 가입한 보험사 두 곳과 동등한 중복보험자 관계이므로, 원래 부담했어야 할 부분을 초과해 지급한 경우 다른 보험사의 부담부분에 한해서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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