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 20대 직장인 김모씨는 출근도 전에 "이미 진이 다 빠진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지옥철(지옥같이 붐비는 지하철)'로 악명이 높은 9호선을 타고 출근하는데,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볼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는 것이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사람에 치이는 건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통근에 1시간 이상 사용하는 인구는 지난 2020년 기준 357만명(15.3%)에 달한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6개국 평균 통근 시간은 28분이지만, 한국인들의 평균 통근 시간은 58분에 달한다. 한국인들은 OECD 소속 타국 직장인보다 약 2배의 시간을 출퇴근에 소모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내에서 통근하는 김씨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경기도민은 인생의 20%를 대중교통에서 보낸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시민들은 더 많은 시간을 출퇴근에 들여야 한다. 국토교통부의 '2020 수도권 대중교통 이용실태'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서울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시민들은 출근에 평균 1시간27분을 사용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는 1시간30분, 경기에서 서울까지는 편도 1시간24분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수집된 교통카드 데이터를 토대로 한 것이므로 집과 직장에서 정류장까지의 이동 거리 등을 포함하면 수도권 시민들은 사실상 3시간 이상을 출퇴근길에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구는 2020년 기준 141만9800여명에 달한다.
문제는 이런 긴 출·퇴근 시간이 직장인들의 삶의 질을 하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긴 통근시간이나 극심한 교통혼잡은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며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통근시간이 늘어날수록 취미·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개인 시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가장 큰 원인도 '출퇴근 시간'에 있다. 지난 13일 취업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45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1.3%가 재택 근무 선호 이유로 '출퇴근 시간이 절약돼서'를 꼽았다. 입사 기업 선택 기준으로 '재택근무 여부'를 포함하는 이유로도 '출퇴근 스트레스에서 해방돼서'가 61.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는 수도권 통근시간이 긴 원인을 3가지로 꼽았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 교수는 "먼저 공간·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도시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그린벨트를 뛰어넘어 신도시가 형성되다보니 서울 중심부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진 것"이라며 "또 신도시 택지를 개발할 때 교통망을 먼저 계획해 '선교통 후주택'이 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신도시들이 구조적으로 서울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는 데다가 급행 철도, 광역 도로 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급행철도, 광역도로를 신설할 때 급행·직선으로 해야 하는데 완행·굴곡으로 만들었다. 분당이나 일산에 지하철을 놓기는 했지만 속도가 느리다"면서 "서울 시내 지하철의 경우 30km/h 내외, 고속 급행은 40km/h 후반대인데,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을 연결하는 건 사실 50km/h도 부족하고 최소 70km/h는 돼야 한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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