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문화된 조항에 위헌 소지
안전운임제 등 입장차 여전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경제계가 정부에 요구한 ‘업무개시 명령’은 사실상 실행되기 어려운 카드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업무개시 명령은 20년 가까이 사문화된 조항인 데다 위헌 소지도 있어 함부로 이 카드를 썼다간 자칫 정부와 화물연대 간 갈등의 골만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대화를 통해 집단운송거부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안전운임제 문제를 두고 정부와 화물연대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어 파업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토부는 13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화물연대와 12일 14시부터 22시30분까지 물류 정상화를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품목 확대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으나 국토부는 검토 결과 수용이 곤란해 대화가 중단됐다"고 밝혔다.
국토부·화물연대 등에 따르면 양측은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3~4차 교섭을 연속해서 진행했으나 열 시간이 넘는 대화에도 불구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최종 타결 직전 국민의힘이 돌연 잠정합의를 번복해 교섭이 결렬됐다"며 "국토부가 협상할 것처럼 해놓고 조율도 안 된 안을 가지고 온 것에 대해 내부가 상당히 격앙돼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화물연대본부의 ‘국민의힘에서 합의를 번복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화물연대와 논의된 사안에 대해 관계기관과 협의 과정에 일부 이견이 있어 결국 대화가 중단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양측이 이번 파업의 불씨가 된 안전운임제 등을 두고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파업도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화물연대는 무기한 파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며 국토부는 표면적으로는 화물연대와 지속적으로 대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5차 교섭 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태다.
파업이 일주일째 지속되자 경제계는 화물연대 파업이 길어질수록 산업계 피해가 커지고 있다며 정부에 업무개시 명령을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업무개시 명령은 운송 업무 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 운송을 거부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업무개시 명령은 법적으로 검토가 필요한 조항이라며 우선은 대화로 이번 사태를 풀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업무개시 명령은 강제성을 띤 조항이라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면서 "법적 검토가 전제돼야 하는 부분이고 아직까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2003년부터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사문화된 제도로 일종의 강제노동 형식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방식"이라며 "화물노동자를 개인사업자라고 보면 적자가 나서 사업을 못 하겠다는데 정부가 강제로 문을 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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