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특허 강국인데…"스마트폰 팔수록 '이것'은 손해"[지식재산이 경쟁력]

③수치로 보는 지식재산권 활용 수준
아시아경제-서울과학종합대학원 공동기획
국제특허 세계 4위지만…산업재산권 22억불 적자
표준특허 확보의 중요성…암홀딩스가 좋은 사례
하이브, 오리지날IP 활용한 사업이 전체 매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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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우리나라는 자타공인 ‘특허 강국’이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를 통한 국제특허(PCT) 출원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했다. PCT 출원은 하나의 출원서를 제출하면 복수의 지정국에 특허를 출원한 효과를 부여하는 제도인데, 한국은 2년 연속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위를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지난해 PCT 출원 건수는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과 미국은 각각 0.9%, 1.9% 늘었고 일본은 0.6% 줄었다. 중국에는 화웨이(PCT 출원 건수 6952건), 미국에는 퀄컴(3931건)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삼성전자 (3041건)와 LG전자 (2885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기업 사옥이 몰려있는 서울 강남구 [사진=위키피디아 제공]

대기업 사옥이 몰려있는 서울 강남구 [사진=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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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통계가 무색하게 한국의 지식재산권(IP) 무역수지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3000만 달러(38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019년 5억3000만 달러(한화 약 6600억원), 2020년 20억2000만 달러(2조5000억원)에 비하면 적자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것이지만 ‘만년 적자’ 신세를 면치는 못하고 있다.

기업 경영과 직결되는 산업재산권 분야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더 심각하다. 산업재산권에는 △특허 및 실용신안권 △디자인권 △상표 및 프랜차이즈권이 포함되는데 지난해 22억1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특히 국내 대기업의 특허 및 실용신안권 무역수지는 14억1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상표 및 프랜차이즈권은 외국인투자 중소·중견기업(-16억 달러)에서 적자였다.

2021년 지식재산권 무역수지[출처=한국은행]

2021년 지식재산권 무역수지[출처=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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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우리나라의 거래 국가별 지식재산권 무역수지 적자 규모를 보면 미국(-30억3000만 달러), 영국(-9억9000만 달러), 일본(-5억8000만 달러) 순이었다. 드라마, 영화 등 한류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저작권 수입이 늘어 그나마 적자 폭이 줄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아이돌그룹 BTS 덕을 톡톡히 봤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정연우 특허청 산업재산정책국장은 우리의 지식재산권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돈 되는 좋은 기술을 엄선해 해외특허를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경제영토가 넓어질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R&D) 투자가 100조원 규모로 높은 점을 감안하면 4, 5년 후에는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지식재산권 적자는 대부분 기업의 전기·전자제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다. 정 국장은 "글로벌 표준특허 선도기업인 퀄컴, 노키아, 에릭슨에 지불하는 기술 로열티가 전체의 3분의 1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기업들이 휴대전화 관련 원천 기술을 많이 갖고 있기에 국내 대기업들이 스마트폰 등 IT기기를 제조해서 잘 팔면 팔수록 해외기업에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가 늘어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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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사업을 잘 할수록 지식재산권 무역적자가 늘어난다는 아이러니는 표준특허 확보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영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 암홀딩스 사례는 우리에게 이런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암홀딩스는 반도체 칩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다. 그러니 공장도 없고 제조 인력도 없다. 반도체 회로도를 설계해 특허를 출원·등록한 후 삼성,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파트너사 1000여곳에 라이선스 형태로 빌려주고 대가(로열티)를 받는다. 라이선스 비용은 100만~1000만 달러(12억~127억원)에 달하고, 로열티는 칩 가격의 1~2%로 알려져 있다. 이 회사는 반도체의 빠른 처리 속도, 낮은 전력 소비에 중점을 두고 설계도를 개발한다. 2018년에는 매출의 42%를 R&D에 투자했다.

제조업체는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좋은 사례가 있다. 그룹 BTS의 소속사 하이브 가 지식재산권을 활용한 사업에 적극적이다. 일찌감치 오리지널 IP를 통해 다양한 2차 저작물을 생산하는 사업에 눈을 뜨고 아이피엑스(IPX) 본부를 설립했다. 하이브 아이피엑스는 BTS 멤버에 기반한 굿즈 기획·개발부터 라인프렌즈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캐릭터 출시까지 다양한 라이선싱 사업을 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사인 '테이크원컴퍼니'는 2019년 하이브(당시 빅히트)와 손을 잡고 모바일게임 ‘BTS 월드’를 제작했다. BTS월드는 게임유저가 BTS 멤버들을 최고의 아티스트로 성장시키는 스토리가 담긴 스토리텔링형 게임이다. 12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으며 케이팝 아이돌 게임 사상 최다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초에는 BTS를 등장인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는 네이버 웹툰, 웹소설도 공개됐다. 하이브가 지난 3월 발표한 2021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굿즈와 지식재산권 라이선싱 등을 통한 매출은 3170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체 하이브 매출의 25%를 차지했다.

◆[지식재산이 경쟁력]기획은
우리 경제는 고환율·고물가·고금리라는 '트리플 악재'를 맞았다. 계속되는 저출생·고령화로 노동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자본 투입도 한계에 다다랐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후보자 시절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며 "거의 5년에 1%씩 떨어지고 있어서 조금 가면 '제로(0) 퍼센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시아경제는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을 탈출하는 방법 중 하나가 무형자산, 특히 지식재산권 강화에 있다고 봤다. 때 마침 새 정부의 신임 특허청장에 한국의 세 번째 여성 변리사이자 30년 이상 지식재산권 분야에 종사한 이인실 한국여성발명협회장이 발탁되기도 했다. 아시아경제는 인간의 지적활동으로 얻어진 발명과 창조의 산물을 제대로 보호받고 수익원으로 활용하는 비즈니스 구조가 필요하고,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고 봤다. 이 주제를 아시아경제와 공동기획한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고영희 교수도 "그런 차원에서 이제 정부 기관인 특허청의 명칭도 통합적인 지식재산 정책을 위해 바뀌어야 할 적절한 시점"이라고 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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