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공상과학(SF) 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는 1941년 단편 소설 ‘리즌(Reason)’에서 놀라온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우주정거장에서 태양광으로 발전을 해 지구나 화성 등 다른 행성으로 전기를 보낸다는 발상이었다. ‘공상’인 듯 했지만 최근 탄소 중립(Net Zero) 과제가 발등의 불이 되고 뉴스페이스시대(New Space)가 열리면서 대안 전력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 우주발사체ㆍ태양광 발전 등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계 주요 국가들이 현실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르면 2030년대 메가와트급 우주태양광발전소가 건설돼 지구나 인공위성, 우주선, 달 기지 등에 전력을 보내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한국은 다른 국가에 비해 최소 10년 이상 뒤진 후발 주자다. 융합연구 등을 통해 핵심 기술을 확보해 국제 협력으로 이뤄질 우주태양광발전소 건설에 참여해 제 몫을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하는 인류는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비화석연료, 즉 신재생 에너지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표적인 게 태양광이다. 환경오염이 적고 무한대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표면의 태양광 발전은 한계가 많다. 대기권에 들어 온 태양광은 구름ㆍ먼지에 흡수ㆍ반사되고 대기에 의해 산란이 일어난다. 특히 태양광 발전은 구름이 끼고 비가 오는 날씨에 극히 효율이 낮아지며 밤에는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계절ㆍ위도에 따른 편차도 크다. 대규모 태양광 시설이 설치되면 미관 손상ㆍ산림 훼손ㆍ농업 생산력 저하 등의 부작용도 많다.
그러나 우주에선 다르다. 태양광의 세기가 훨씬 강하다. 날씨ㆍ밤낮에 상관없이 24시간 가동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세계 주요 국가들이 청정 전력 생산을 위해 연구 중인 것이 바로 우주태양광발전소다. 폭 3~6km의 거대한 태양광발전장치를 단 위성을 고도 3만6000km 안팎의 정지궤도에 띄어 놓고 전기를 생산한 다음 마이크로파 또는 레이저 빔으로 송신받아 다시 전력으로 변환해 활용한다는 개념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ㆍ항우연)에 따르면 1㎡ 크기의 태양전지를 기준으로 지상에선 0.4KW를 발전한다면 성층권은 0.7~0.8KW, 우주태양광발전소가 위치하는 고도 3만6000km의 정지궤도에선 약 1.36KW 발전이 가능하다. 여기에 24시간 날씨ㆍ위도ㆍ밤낮에 상관없이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주태양광발전소의 효율은 지상에 비해 십여배 높다. 이같은 우주태양광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기술은 이미 대부분 개발돼 있어 스케일을 키우는 한편 효율화, 안정화 과제만 남아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최준민 항우연 미래혁신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탄소 중립 시대에 청정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해야 하는 과제를 기술로서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중의 하나"라면서 "우리나라는 휴전선에 초대형 렉테나(수신 장치)를 설치해 북한과 공동 활용하면 남북간 교류ㆍ평화 정착은 물론 상호간 전력 문제 해결 등 큰 이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앞선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1970년대 이미 연구를 시작했다가 기술적 미성숙ㆍ경제성 부족 등을 이유로 중단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급속도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태양광 발전ㆍ우주 발사체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건이 훨씬 나아졌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은 이미 위성을 띄어 전력을 주고받는 실험을 하는 단계다. 미 해군연구소는 2020년 6월 우주태양광발전위성(SPS-ALPHA) 모듈을 우주 궤도에 쏘아 올려 태양광 발전과 방사에너지 변환을 실제 시행해 보고 있다. 우주 환경에서 얼마나 에너지 변환이 잘 이뤄지고 전송되는 지, 열 발생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지 등에 대해 연구 중이다. 지난해 4월에는 미 공군연구소(AFRL)가 우주태양광발전 시범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방에 고립된 군사 기지에 대한 에너지 공급이 위협받을 때 우주태양광발전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도 5GW급 초대형 우주태양광발전 위성(SPS)을 발사하는 계획을 수립해 연구 중이다. 가로 5km, 세로 15km의 어마어마한 크기다. 지상의 수신안테나도 가로 6.5km, 세로 8.5km에 달하는 규모로 검토되고 있다. 미 국방부도 무선태양발전실험장치(WISPER)을 개발해 600km 극궤도에서 지상으로 35GHz의 마이크로파를 활용해 전력을 송신하는 실험을 한 바 있다.
탄소중립에 적극적인 유럽에서도 우주태양광발전에 뛰어들고 있다. 영국은 지난해 에어버스, 캠브리지대, 위성제조업체 SSTL 등 50여개 기업ㆍ연구조직들이 참여하는 ‘영국 스페이스 에너지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켜 본격적인 연구 개발에 들어갔다. 이미 인터네셔널 일렉트릭 컴퍼니라는 엔지니어링 회사에 의해 ‘카시오페이아(CASSIOPeiA)’라는 이름의 우주태양광발전위성이 개발 중이다,
일본도 1990년대부터 무선 전력 송신 기술을 연구하고 있으며, 2030년대 내에 우주태양광 위성을 발사해 2040년쯤에는 1GW급의 전력을 우주에서 공급받는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도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로 선두 대열에 올라 있다. 중국은 2014년부터 우주태양광발전위성(MR-SPS)을 연구 중이며, 2030년대 실용화해 2040년대에는 기가와트급 우주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지상으로 마이크로파 또는 레이저를 이용해 전력을 공급받는다는 목표다.
우리나라는 2018년 제3차 국가우주개발진흥계획에 우주태양광발전을 포함시키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항우연은 이듬해 ‘한국형 우주태양광 발전 위성’을 띄우겠다며 로드맵을 제시했다. 2020~2025년사이에는 무선 전력 송신 기술, 태양광 발전 및 수신 장비 개발, 고용량 전력 관리 시스템 구축 등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이후 2029년까지는 소형 위성을 통해 관련 기술들을 실증하고 2035년까지는 KW급, 2040년대엔 MW급을 개발하는 한편 2050년대 이후엔 GW급 우주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해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한다
이중 가장 핵심 기술인 장거리 무선전력 전송 핵심 기술은 한국전기연구원(KERI)이 중심이 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ERI는 지난해까지 4.8kW급 전력을 마이크로파로 변환해 110m 거리에서 송수신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해 시험 중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 최고효율을 가진 사전정합형 전력증폭기 등 무선전력 송출용 고성능 소형 송출 소자, 초고주파 집적소자와 신소재 기반 고내량 고효율 수전 회로 개발 등의 성과를 거뒀다. 국내 최초로 무선전력전송 옥외 실험국을 준공했고, 10kW급 원격연동 송출시스템도 구현했다. 실시간으로 위치가 변하는 목표를 추적해 전력을 송수신하는 기술도 개발해 올해 내 실제 비행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진행된다. 2025년까지 우주 전력용 무선전력전송기술 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다.
문제는 전력 송수신 과정의 효율성ㆍ안전성 확보다. 주요 선진국들은 생산 전력 대비 수신 전력이 약 70~80% 되는 반면 현재 전기연이 개발한 장비들은 이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카이스트에서 2019년 개발한 RF방식의 무선전력전송시스템의 효율도 10m 거리에서 20%의 효율을 갖는 데 그쳤었다. 마이크로파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해소해 문제다.
우주태양광발전은 복합한 기술들이 얽혀 있는 만큼 기술적 과제들도 다양하다. 우선 발전소 건설을 위한 자재ㆍ모듈ㆍ부품 등을 정지궤도까지 실어 나를 고성능 우주발사체 기술이 필요하다. 미국ㆍ일본ㆍ중국ㆍ유럽 등은 모두 발사체를 가졌지만 한국은 오는 6월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하고 차세대 발사체를 무사히 개발해도 2030년이 되어야 자주 발사체를 소유할 수 있다. 특히 1회 발사 비용을 최대한 낮출 수 있는 다회용·재활용, 청정·저가 연료를 이용한 로켓 개발이 필수적이다. 효율성ㆍ안전성이 보장된 무선 전력 송신 기술과 함께 고효율ㆍ유연성 있는 태양광 전지 제조 기술, 조립을 위한 무인 인공지능(AI) 로봇 기술, 초경량ㆍ초강력 구조체 건설을 위한 소재 기술 등도 발전되어야 한다.
이상화 KERI 전력ICT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마이크로파의 강도가 물질이 익거나 녹는 정도의 파워는 아니고 가장 높을 때가 땡볕이 있을 때 직사광선의 수배 정도 수준이며 수전부의 가장 자리는 인체에 영향이 없는 수준으로 설계 되고 있다"면서 "빔이 정확히 향하고 있는 지 실시간 감시해 조정하고 차단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므로 안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으며, 수신 안테나를 크게 만들고 사용 주파수를 낮게 만드는 등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도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