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망 이용료 갈등, 세계가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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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국의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인 SK브로드밴드와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인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 갈등을 다루는 소송의 2심이 시작됐다.


1심 법원은 SK브로드밴드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SK브로드밴드가 연결이라는 역무를 제공했고 넷플릭스가 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2심에서 넷플릭스는 임시저장장치인 오픈 커넥트 얼라이언스(OCA)를 통해 망 사용료는 청산되고 있으며, 상호무정산으로 서비스를 연계하는 빌앤드킵(Bill and Keep) 방식이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SK브로드밴드는 OCA를 설치하더라도 OCA 이후 국내 망 이용료와 공간·전기 사용료 이슈는 존재하며, 빌앤드킵은 ISP 간 트래픽이 유사할 때 별도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본 건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양측 입장이 팽팽한 만큼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소송과는 별개로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CP에게 망 사용료를 의무적으로 내게 하는 법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그중 하나인 김영식 의원안은 부가통신사업자가 기간통신사업자의 망을 이용해 인터넷 접속 역무를 제공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무의 제공에 필요한 망의 구성 및 트래픽 양에 비춰 정당한 이용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망 이용료 이슈는 이제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 IT기업 규제에 열심인 유럽연합(EU)의 통신업체인 독일 도이치텔레콤, 프랑스 오렌지, 영국 보다폰 등의 대표들은 지난 2월 중순 EU 의회에 서한을 보내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도 망 확장 비용을 의무적으로 분담하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은 자국의 글로벌 CP를 보호하는 입장이다.

지난 3월 발표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는 넷플릭스, 구글 등 CP의 ISP에 대한 망 사용료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의 국제 무역 의무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망 이용료 법안을 디지털 통상의 장벽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한국에서의 망 이용료 이슈는 글로벌 통신업체와 빅테크 간의 대전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가 차원을 넘어 인터넷 생태계 참여자 간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글로벌 빅테크의 시장 잠식을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 EU는 데이터 국외 이전을 제한하는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시행한 가운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부터 해외에 사업장이 없어도 매출이 발생한 곳에서 세금을 부과하는 ‘디지털세’를 통해 미국의 주요 빅테크를 견제할 계획이다. 이제 망 이용료 규제는 미국 빅테크 견제의 제3라운드가 되고 있다.


망 이용료 규제를 법률로 시행하는 것은 국내 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를 채택한 국가가 가격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이론적인 타당성은 물론 현실적인 집행 가능성에도 의문이 있다. 가격규제를 의도한 인앱결제 강제방지법도 의욕적인 입법에도 불구하고 시행 과정에서 당초 목표 달성에 애로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구체적 사건에서 법원의 판결을 지켜보되, 인터넷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트래픽의 급증에 따른 네트워크 투자 확대 필요성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ISP와 CP가 상호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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