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나연 인턴기자] 제이콥 주마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2009∼2018년 재임)이 나라를 인도계 재벌 굽타 가문에 통째로 팔아넘겼다는 내용의 반부패조사위원회 보고서가 29일(현지시간) 나왔다.
일간 더시티즌과 외신에 따르면 레이먼드 존도 현 헌법재판소장이 위원장을 맡은 반부패조사위는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 제4권을 이날 발간해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1천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번 보고서는 주마 전 대통령이 친구인 굽타 형제들에 재임 초기부터 전략적으로 포섭돼 나라 곳간을 이들에게 통째로 넘겨주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적시했다. 주마 전 대통령의 아들 하나도 굽타 가문과 사업 관계를 맺었다.
보고서는 "주마 대통령은 첫 임기 매우 이른 시기부터 굽타 가문이 그에게 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려고 했다는 점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는 이전에 대체로 알려진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연루자들에 대한 검찰의 기소를 촉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주마 전 대통령을 통한 굽타 가문의 국정농단으로 국영 전력회사 에스콤의 경우 이사회와 중역들이 친(親)굽타 인물들로 채워져 147억 랜드(약 1조1천800억 원)에 달하는 계약이 굽타 재벌 계열 회사들과 체결됐다.
보고서는 당시 에스콤 최고경영자(CEO)인 브라이언 몰레페 등 2014년 무렵 이사회를 형사 기소할 것을 검찰에 권고했다. 에스콤도 보고서와 관련해 자체적으로 사내 조사위원회를 출범하고 부정 계약금 회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남아공 전력의 90%를 공급하는 에스콤은 4천억 랜드(약 32조원) 규모의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다. 경영부실과 정비 불량으로 인한 전체 전력 시스템의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순환단전(로드셰딩)을 실시하면서 남아공 경제성장과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보고서는 에스콤을 비롯해 방산기업 데넬, 항만 및 철도운영회사 트란스넷 등 주요 국영기업들이 굽타 가문의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고 말했다.
존도 위원장은 이와 관련, "부정부패가 이처럼 만연할 때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느냐"고 질타했다. 라마포사 현 대통령도 당시 부통령을 하고 있었다.
2018년 출범한 반부패조사위는 3년에 걸쳐 300명에 달하는 증인들을 조사해 지난 1월부터 그 결과물인 보고서를 순차적으로 발간하고 있다. 오는 6월 중순 마지막 5권이 나올 예정이다.
현재 80세인 주마 전 대통령은 잇단 부패 추문으로 선거 패배를 우려한 ANC에 의해 2018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굽타 형제들은 두바이로 도주했다.
반부패 공약을 내세우며 집권한 라마포사 대통령은 주마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국고에서 도난당한 금액이 총 5천억 랜드(약 4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주마 전 대통령은 반부패 조사위 출석을 거부하다가 헌재에 의해 법정모독죄로 15개월 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7월 수감됐으나 9월 의료적 가석방으로 풀려난 상태다. 수감 당시 그의 출신지인 콰줄루나탈 등에서 대규모 약탈과 방화, 폭동이 일어나 350명 이상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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