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가스공급 압박에 대해 회원국간 공조와 대체 수급 확보를 통해 이겨내겠다며 정면대결을 선포했다. 미국도 유럽과 공조를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확대를 발표하고, 한국 등 아시아지역 동맹국들도 가스지원에 동참하면서 서방과 러시아간 에너지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당장은 각국의 공조로 수급 문제가 해소될 수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전세계적 에너지 위기로 확대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7일(현지시간) 러시아 가스프롬은 이날 성명을 통해 "폴란드와 불가리아가 대금을 지불치 않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가스공급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다른 유럽국가들도 지불기한까지 가스대금의 루블화 결제를 거부하면 공급을 끊을 수 있다"고 압박했다.
해당 발표에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크게 흔들렸다. 유럽 내 천연가스 주요 지표인 네덜란드 TTF 가스 선물가격은 러시아의 공급중단 발표에 장중 메가와트시(MWh)당 115유로(약 15만원)까지 치솟았다. 지난 18일 대비 32%오른 것이다.
EU는 즉각 반발하며 러시아의 가스 무기화에 정면으로 맞서겠다고 경고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유럽의 가스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는 가스프롬의 발표는 러시아가 가스를 협박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이같은 시나리오를 예상했으며 준비돼있다. 모든 회원국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고 대체 가능한 공급 물량 확보와 EU 전역에서 최고의 저장량 수준을 확보하기위해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해서도 "인접한 EU국가들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도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을 늘리겠다며 유럽의 가스수급 해소에 적극 나설 뜻을 내비쳤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미 에너지부는 미국 기업 2곳이 하루 1415만㎥ 규모의 LNG 추가 수출을 허용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은 이미 예상됐던 에너지 무기화 조치"라며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도 LNG 지원에 동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외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이 미국과 유럽의 요청에 따라 이번 여름까지 LNG 물량 일부를 유럽으로 보낼 것이라 전했다.
단기적으로는 EU 회원국들과 미국, 아시아 동맹국들의 공조로 유럽의 가스공급 위기는 심화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에너지 대결이 가을철까지 장기화될 경우 전세계적 에너지 위기로 번질 위험성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LNG 최대 수출국인 미국과 호주, 카타르 등은 이미 가능한 최대 수준으로 수출을 하고 있고 LNG 수출계약의 70%는 10년 이상 장기계약이라 유럽이 대체 수급을 찾는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에서 LNG 수출을 급격히 늘린다해도 LNG 터미널 등 인프라 시설이 전무한 독일 등 유럽 중부와 동부국가들이 먼저 인프라 투자에 나서야한다고 이코노미스트지는 지적했다.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는 벌써부터 러시아와의 에너지 대결 단일대오에서 이탈하는 모습까지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탈리아 최대 에너지기업인 에니(Eni)가 러시아의 요구대로 가스프롬은행의 루블화 특별계좌 개설을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유럽 내 최소 10여개 기업이 이미 가스프롬은행 계좌를 개설했고, 4개 기업은 루블화로 대금까지 지불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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