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고병국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종로구)은 10일 오후 2시 종로구청장 출마선언 및 기자회견을 열고 6?1지방선거 종로구청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고병국 시의원은 "오랜 시간 ‘친절한 구청장’을 꿈꿔왔다"며 "구청장 등 공직자의 책임과 의무는 ‘친절한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또, "친절은 혁신의 원천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주민들이 필요한 정보를 전달, 정책과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친절해지려는 노력이 결국 ‘혁신’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고 의원은 구청장은 선출직이 아니라 서비스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년 이상 입법과 정책 및 예산을 다루어온 경험, 정세균 전 총리의 보좌관으로서 익힌 정치가의 자세와 태도, 종로구 시의원으로서 지역 현안을 다루어 온 실적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친절한 구청장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고병국 시의원은 ‘매력 넘치는, 끌리는 종로’를 만들겠다는 비전과 포부도 밝혔다. 주거환경, 유동인구와 상권, 문화예술자원, 도심산업 기반 등 종로가 가진 잠재력을 분출시키기 위해, 과도한 규제와 관성적 행정문화, 소극적 투자 등 혁신의 장애물을 걷어내겠다고 강조했다.
고 의원은 ‘우리집 상담센터 설립’ 등 대표 공약도 제시했다. 정비사업부터 집수리까지 우리 집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충분히 투명하게 제공하고, 가능하면 컨설팅까지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 외에도 상권 활성화를 위한 ‘홍보미디어 종로 플랫폼 구축’, ‘종로구 장인 인증제 도입’, ‘인사동 국제 엔틱페어 유치’등 이색적인 공약을 함께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고의원은 ‘고병국은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며, 새로운 종로구청장에게 요구되는 마음가짐, 사고방식, 유능함으로 종로구민의 선택을 받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고병국 서울시의원은 만 49세의 젊은 나이에 비해 굵직한 경력과 종로의 현안 및 사정에 밝은 강점으로 더불어민주당의 강력한 종로구청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종로구청장 선거 출마선언문
좋아요 종로! 달라요 고병국!
서울시의원 고병국입니다. 종로구청장 출마를 선언합니다.
[친절의 의무와 책임]
오랜시간 제가 꿈꿔온 구청장의 자화상은 ‘친절한 구청장’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가요? 너무 쉬워보이나요?
그러면 한번 여쭈어 보겠습니다. 직간접적으로 구청과 관련된 일을 보면서 ‘친절함’ 때문에 감동받은 적이 있으십니까?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쉬워 보이지만, 아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 것입니다.
구청장이 일만 잘하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구청장이, 공직자가, 과연 ‘일을 잘 한다’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매사 주민에게 친절하게 서비스 하는 것. 저는 그것이 가장 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초자치단체의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친절은 곧 혁신]
제가 말하는 친절은, 공손하게 인사만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친절은 일종의 ‘혁신’입니다.
어떻게 주민들에게 정보를 충분히, 쉽게 전달할까? 어떻게 주민들이 꼭 필요로 하는 정책과 사업을 추진할까? 어떻게 주민들의 생업과 가계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 주민들이 행정과정에 부담 없이 참여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이 함께 어울려 살 수 있을까?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하면 더 친절해질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과 개선의 노력이 ‘혁신’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혁신의 원천이 ‘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청장은 서비스직]
친절하려면 우선 잘 알아야 합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운영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입법과 정책의 과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업과 예산의 실무도 잘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종로 곳곳의 사정과 주민의 갈증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저는 20년 이상 입법과 정책, 예산을 다루어 왔습니다.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체계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정세균 전 총리의 오랜 보좌관으로서, 바른 정치가의 자세와 태도도 익혔습니다. 특히 지난 4년간, 종로구 서울시의원으로서, 무엇보다 생활정치를 중시하며, 종로의 크고 작은 현안과 주민들의 관심사를 직접 챙겨왔습니다.
저는 구청장은 선출직보다는 서비스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구청장 그 누구보다 ‘친절한 구청장’이 될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매력 넘치는, 그래서 끌리는 종로]
종로 구청장으로서 저는 ‘끌리는 종로’를 만들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매력이 넘치는 종로입니다. 누구라도 종로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것입니다.
이미 종로는 그러한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녹지와 공원이 감싸고 있는 생태적 주거환경. 풍부한 유동인구와 상권. 전통, 문화, 예술 자원의 거점. 봉제, 주얼리산업 등 도심 내의 산업적 기반 등이 종로의 대표적인 저력입니다.
문제는, 오랜 시간 종로의 잠재력이 억눌려 왔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과도한 규제 때문에 그렇고, 또 어떤 경우는, 관성적인 행정문화가 원인이기도 합니다. 투자가 제 때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도 있고, 시대적 변화에 맞는 혁신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종로의 잠재력을 분출시키는데 장애물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장애물을 하나씩 걷어내는 것이 매력 넘치는, 그래서 끌리는 종로를 만드는 종로구청장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친절과 혁신을 위한 대표공약]
오늘 이 자리에서 종로의 비전과 정책에 대해 모두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오랜시간 마음에 담아온 대표적인 공약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집 상담센터 설립입니다.
집과 관련된 걱정, 갈등, 혼란의 원인은 상당부분 정보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비사업부터 집수리까지, 내가 사는 집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충분히 투명하게 제공하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가능하다면, 기본적인 컨설팅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정확한 정보와 정책을 바탕으로 내 집에 대한 계획을 본인 스스로 세워나갈 수 있게 하겠습니다.
둘째, 홍보 미디어 종로플랫폼 구축입니다.
음식, 상품, 시장, 전시, 공연 등 모든 분야에서 성공의 비결은 홍보입니다. 그런데 시시각각 변하는 미디어 홍보 환경에 각자가 적응하고 대응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종로의 상권 활성화와 문화?예술 전시 공연의 도약을 위해 홍보는 구청장이 맡는다는 각오로 혁신적인 미디어 홍보 플랫폼을 구축하겠습니다.
셋째, 종로구 장인 인증제를 도입하겠습니다.
종로의 대표적인 성장 잠재력은 각 분야의 생활장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 명맥이 끊길지 모를 일입니다. 종로의 장인을 발굴하고 기록하며 숙련기술의 계승을 돕겠습니다. 장인의 기술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특별한 상품으로 주목받게 하고 싶습니다.
넷째, 인사동 국제 엔틱페어 유치입니다.
전통과 문화는 옛 것 그대로 꽁꽁 묶어둘 일이 아닙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여야 제대로 계승?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인사동 엔틱페어를 예로 말씀드렸지만 종로 전반의 고유 전통문화예술을 경제?산업적으로 재생산 하겠습니다.
다섯째, 청년활력공간을 조성하겠습니다.
흔히 종로에 청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십니다. 오해입니다. 종로 인구 중 MZ세대가 28%에 달합니다. 그러나 청년에 대한 정책과 사업은 매우 미흡하고 빈약합니다. 기존의 청년정책을 새롭게 리모델링 하고, 청년들의 ‘끼’를 발산시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좋아요 종로, 달라요 고병국]
제 희망은, 고병국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마음가짐이 다르다. 사고방식이 다르다. 유능함이 다르다. 그런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긴 이야기를 모두 담아서 ‘좋아요 종로, 달라요 고병국’이라는 선거 캠페인 슬로건을 정했습니다. “좋아요, 종로” 할 때까지! “달라요, 고병국”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고병국 서울시의원 약력
- 현) 서울시의원(도시계획관리위원회)
- 전) 정세균 국회의장 정무비서관(2급 상당)
- 전) 현대아산주식회사 과장
-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석사
- 저서 「법 만드는 청소부(2021, 도서출판 이불)」
□ 고병국 서울시의원이 살아온 길
▶ 대전에서 보낸 학창시절
* 1973년, 대전에서 출생하여 고등학교 졸업까지 주로 대전에서 성장했다. 비교적 ‘모범생’ 그룹에 가까운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떤 이유였는지 알 수 없지만 ‘글쓰기’를 좋아했고, 막연하게나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기도 했다.
▶ 혼란과 갈등 속 대학생활
* 1990년, 고려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80년대 후반의 격렬한 민주화운동이 정점을 지난 시기였지만, 여전히 ‘대학정신’을 외치며 명맥을 이어가던 학생회 활동에 참여했다. 소신이라기보다는 뭔가 거부할 수 없는 의무감의 발동이었다. 90학번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겪은 90년대의 정치적, 사회적 과도기에서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으며 다소 늦게 입대를 선택했다. 제대 후에야 뒤늦게 찾아온 ‘공부’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을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을 통해 채웠다.
▶ 호기심으로 발 디딘 국회
* 2000년, 국회의원 비서라는 생소한 직업을 택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국회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후 만 4년 동안 밤낮없이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일하면서, 법과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중심축이 ‘정치’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20여년 넘게 함께해 온 정치인 정세균을 통해 선출직의 자세와 역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다.
▶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
* 2004년, 대북사업 전문기업인 현대아산에 입사했다. 여의도 국회에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 아닌가라는 회의감과 조바심이 다른 세상, 다른 직업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마침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현대아산’에 입사 기회가 생겼고 과감하게 선택했다. 기업은 정치와는 분명히 다른 세계였다. 대기업의 전문성과 체계적 시스템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대북협상의 시간, 현대아산
* 현대아산 입사 후 기획업무를 맡았다가 사장 비서실장으로 발령이 났다. 국회 비서관 출신이라는 경력이 고려된 듯 했다. 비서실에서 가장 큰 임무는 북한과의 협상 관리였다. 금강산관광의 절차와 요금, 내금강관광 등 새로운 관광코스 개발, 백두산관광 신사업 런칭 등이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결정되었다. 당시에는 북한 최고위층과의 소통이 상당부분 ‘친서’를 통해 이루어졌다. 일종의 서신정치였다. 편지의 초안을 잡는 일이 종종 내 몫이었다. 현대아산 입사 후 만 6년간 ‘대북사업’에 투신한다는 보람과 열정을 가슴에 담았다. 정치와 기업을 함께 경험한 것은 내 인생의 큰 자산이다.
▶ 의리와 실리 사이의 선택
* 2010년,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기업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실리’에 좀 더 가까운 길이었으나, 4선 중진 정세균 의원의 행보에 미약하나마 내 역할이 필요한 때였다. ‘의리’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대기업에서 배운 ‘일머리’ 덕분에 국회에서 처음 일할 때 보다는 나름 유능하게 일할 수 있었다.
▶ 종로에서 치른 두 번의 전쟁
* 2012년 총선, 정세균 의원은 무주·진안·장수 지역구를 떠나 서울 종로에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민주당의 무덤’이라 불리던 종로였지만 정세균 특유의 성실함으로 승부하여 종로구민의 선택을 받았다. 2016년의 두 번째 종로전쟁은 정책과 전략을 치밀하게 설계한 선거였다. 당시 오세훈 승리를 점쳤던 대다수의 예상과 달리 결과는 정세균 압승이었다. 유권자와의 스킨십, 실용적 정책, 과학적 전략이 만든 승리였다. 정치인의 참모로서 가장 큰 희열을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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