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만 나이' 통일 공약으로 매번 무산됐던 '나이 셈법' 정리가 본격화할 지 관심이 모아진다. 만 나이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됐지만 현재는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사용해 '한국식 나이(Korean Age)'로도 불리고 있다.
나이 셈법에 대한 불만은 일상에서 쓰는 나이와 법적 기준인 만 나이가 달라 생긴 혼선에서 나온다. 공문서상 나이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나이와 달라 행정상 오류나 혼란,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태어난 시점을 0세로 볼 것이냐, 아니면 1세로 볼 것이냐'에 따라 '연 나이'와 '세는 나이'로 나뉘고, 이에 만 나이까지 더하면 한국에서 쓰이는 나이 셈법은 총 3가지인 셈이다. 세는 나이에 따르면 12월31일생의 경우 태어난 지 하루 만에 2살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동일연도 출생자보다 1년 빨리 학교에 입학하는 빠른년생들의 불멘소리가 컸다. 1∼2월에 태어난 빠른년생들은 학교를 함께 다닌 1살 많은 학생들과 동일한 정체성을 갖지만, 실제로 사회에 나온 뒤에는 다시 '세는 나이'로 사회적 나이를 계산해야 해 불편함이 컸다. 이른바 '족보 브레이커(나이에 따른 호칭 정리를 어렵게 만드는 사람을 일컫음)'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이같은 조기입학제도는 지난 2009년 폐지됐다.
나이 셈법을 통일하자는 주장엔 국민적 공감대도 높다. 한국리서치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24∼27일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71%)이 한국식 나이를 폐지하고 만 나이를 사용하는 것에 찬성했다. 윤 당선인의 만 나이 통일 공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대선 과정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59초 쇼츠 영상을 올려 이같은 공약을 내놨다. 국민의힘 정책본부는 "세금, 의료, 복지 등 국민들의 실생활에 유의미한 기준이 되는 건 만 나이"라며 "법 개정으로 법적 나이 기준의 혼선을 줄이고, 사회적으로 정착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이 셈법을 뜯어 고치려는 정치권의 시도는 이미 있었다. 지난해 6월22일 이장섭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3명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당시 행안위 수석전문위원실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우선될 필요가 있다"는 검토의견을 냈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19년 1월에도 황주홍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이 공문서에 만 나이 기재를 의무화하고, 만 나이로 계산·표시하는 것을 권장하는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제출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공문서 등에서 이미 만 나이가 사용되고 있는데 굳이 표준화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한국은 1962년부터 만 나이를 공식 나이로 발표하고 공문서, 법조문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만 나이 통일 공약이 실현되더라도 시민들이 익숙한 세는 나이를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나온다. 나이에 따라 서열을 나누려는 경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법이 제정되더라도 관습이나 고유 문화를 통째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다만 정부 정책이나 공문서에서도 사용하는 나이가 다르다는 점에서 편의를 위해 어느쪽으로든 통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관공서와 병원, 공문서와 법정 등에서는 만 나이를 사용하지만 병역법이나 술·담배 구매 등에 쓰이는 청소년보호법 등은 편의를 위해 연 나이를 사용한다.
한편 지자체에서 행정상 불편을 이유로 '만 나이 일원화'를 건의한 사례도 있다. 경기 평택시는 지난 2월23일 연령계산방식을 '만 나이'로 통일해달라고 국회와 중앙부처 등에 건의했다. 국제적 표준이자 법률상 나이인 '만 나이'와 일상에서 사용하는 나이가 달라 일선행정에서 민원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 외국인과의 소통에서 정보전달의 혼선이 생기고 12월 출산을 기피하는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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