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토론회를 하겠다고 밝혔다. 공당 대표가 장애인 정책을 주제로 당사자 시민단체와 토론회를 벌인다니 환영할 만하지만 생산성 있는 정책 토론이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 대표는 지하철 출퇴근길 승하차 시위를 벌인 전장연 측을 향해 '서울시민을 볼모 삼아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아집을 버려야 한다(3월27일 페이스북)'고 하거나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3월 28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고 규정했다. 소수자 정치를 하는 측에서 소수자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보다는 '언더도그마(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 담론으로 프레임 전쟁을 벌여왔다(3월26일 페이스북)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프레임 전쟁은 이 대표가 더 잘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장애인들이 지하철 안에서 시위를 벌이게 되면 누군가는 불편을 겪게 된다. 이 점을 이 대표는 교묘하게 파고든다. 이를 통해 장애인 시민과 비장애인 시민의 대립 구도를 만든다. 일상의 불편함을 기가 막히게 콕 집어 내니 '맞는 말을 한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다수의 지지를 얻어 선출된 당 대표라는 직위는 당위성을 더하는데 좋은 밑천이다. 그 속에서 이동권을 비롯한 장애인 단체가 수십년간 외친 가치들은 모두 음소거 된다. 결국 소수와 다수의 싸움으로 논쟁은 변질되고 이 대표의 승산은 충분히 보장 받는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평상시에는 장애인에 대해 대놓고 혐오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다. 하지만 대놓고 혐오하지만 않을 뿐, 동료시민으로서의 존중하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른바 '시혜적 시선'에 가깝다. 시혜적 관점이 차별로 바뀌는 것은 일순간(3월29일 페이스북)"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약자 때리기 전략은 기득권 정치 문법 그 자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은 20대 남성과 20대 여성을 놓고 봤을 때 상대적으로 20대 여성의 정치적 결집성이 약하다고 판단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로 상징되는 '갈라치기' 전략을 폈다. 0.73% 표 차이의 신승을 거두면서 다소 약화되긴 했지만 보수 기득권은 끊임 없이 때릴 수 있는 약자를 찾아가며 지지층 결집을 유도해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이런 정치는 미래 지향적이지도 않고 정당성도 없으며 국민 통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갈등과 분열, 증오와 진영 정치의 한 축을 끊임없이 재생산해낼 뿐"이라고 비판했다. 박 평론가는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으면서 기득권을 지켜 나가는 방식인데 미국에서도 과거 흑인을 때리거나 아시아인, 아니면 남미 출신 사람들을 때리는 정치가 성행했다"며 "한국 정치도 그렇게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탑승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진행한 장애인권리예산 및 관련법 개정 요구에 대한 인수위 답변 촉구 삭발 투쟁 결의식에서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이 삭발을 마치고 지하철에 오르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이 대표는 자신이 장애인 혐오를 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혐오 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2017)'에서 혐오 표현을 '어떤 개인 집단에 대하여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혐오 하거나 차별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으로 정의 내렸다. 물론 이 대표가 장애인 혐오 표현을 대놓고 직접적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자신의 책임은 최대한 회피하면서 의도했던 정치적 효과를 가져오는 프레임 전쟁을 통해 승리를 달성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국민의힘 추구하는 정치 이념(강령) 중 하나는 '우리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며 진영 논리에 따라 과거를 배척하지 않는다'이다. '약자와의 동행'은 10대 약속에도 포함돼 있다. 이 대표가 1일 장애인 탈시설에 반대하는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 부모회'와 간담회에서 의견을 들었고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한 '장애인 개인예산제 도입 방안과 과제' 토론회에 참석했다. 다소 갑작스러운 정책 행보였지만 이 대표 스스로가 장애인 단체들에 '립서비스' 하지 않고 윤석열 정부 출범 전 국민의힘에서 먼저 관련 정책을 내놓겠다고 자신한 만큼 예산 심의 과정에서 늘 우선 순위에서 밀렸던 장애인 정책이 이번에는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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