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러시아 정부가 석유수출 대금으로 자국 화폐인 루블화를 받겠다고 선언하면서 국제 석유시장에 혼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방의 대러제재로 심각한 외화 및 국부유출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자국화폐로 석유대금을 받겠다는 결정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들도 나오고 있는데요.
러시아가 자국 화폐 환율방어와 함께 군수물자를 생산할 자국 방산업체들의 결제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육지책을 쓰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군수물자 대부분을 자체 생산하고 루블화 결제로 주문과 지불이 이뤄지는 러시아 방산업체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외화보다 루블화가 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죠.
26일(현지시간)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전국 학교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명령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급 학교들은 할당된 루블화 액수만큼 모금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했는데요. 러시아 정부가 이번 전쟁으로 이미 3조5000억루블(약 41조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앞서 국영 가스업체인 가스프롬에 모든 수출대금을 루블화로 받을 것도 지시했죠. 가스프롬의 연간 수출대금은 97% 이상이 달러나 외화로 받고 있었지만, 이를 모두 루블화로 받으라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 역시 부족해진 루블화를 충당하기 위한 전략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면서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린 상황이라 루블화를 발행할 수는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루블화를 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되는데요.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루블화를 모으려는 이유는 러시아 특유의 방위산업 구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러시아는 몇몇 대형 방위산업체들이 대부분의 군수물자를 러시아 내에서 생산하고 정부에 공급하고 있으며, 결제대금으로 루블화를 사용하고 있죠.
영국 BBC에 따르면 러시아는 첨단 반도체 등이 사용되는 일부 스텔스 전투기나 첨단무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인화기 및 군수물품을 러시아 내에서 자체 생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최대 무기업체인 칼라시니코프를 비롯해서 전체 소형화기의 95% 이상이 러시아에서만 생산되고 있는데요.
옛 소련 시절부터 서방과의 대결에서 방위산업 자급자족을 중시하다보니 이런 폐쇄적인 체제가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있죠. 그러다보니 당장 눈앞에 전선에 보낼 군수물자를 지원하려면 외화보다는 막대한 양의 루블화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주요 요인으로 알려진 병참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죠.
이러한 자구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군의 병참부족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무기와 탄약부족은 물론 방한장비 부족으로 병사들이 대거 동상에 걸리기까지 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요. 이는 러시아군 내부에 만연한 부정부패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최근 국제투명성기구(TI)의 집계에서 러시아군의 군납, 무기조달 및 방위계약 이행에 대한 투명성은 100점 만점의 36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최하단계인 F등급을 받았습니다. 부정부패가 일상화돼 조달 물자가 전선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판단되고 있죠.
이번 전쟁에서 장성급이 6명이나 전사한 것 역시 부정부패가 크게 한몫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CNN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개전 이후 지금까지 장성급 6명을 비롯해 15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부분 우크라이나 스파이들이 부패한 러시아 군부로부터 주요 지휘관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암살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졌죠.
이처럼 심각한 부패의 주요 원인은 군인들의 낮은 월급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러시아군 일반 사병들의 평균 월급은 480달러(약 58만원) 수준으로 우크라이나군 월급의 3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휘관들 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들도 지급받은 무기나 물자를 멋대로 판매하는 관행도 심한 것으로 알려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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