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원아들을 학대한 혐의로 기소까지 된 보육교사가 형사재판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더라도 아동학대 정황이 의심되는 교사를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이상훈)는 어린이집 원장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중앙노동위원회가 2020년 6월 10일 원고(A씨)와 피보조참가인(보육교사) 사이의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 사건에 관해 한 재심판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2019년 10월 2일 어린이집 CCTV 영상을 확인하던 중 생후 12 ~ 23개월의 원아들로 구성된 만 1세반을 맡고 있는 보육교사 B씨의 아동학대 정황을 목격했다.
A씨는 같은 달 4일과 7일 B씨에게 해당 영상을 보여주며 설명을 요구한 뒤 어린이집 운영위원회를 열어 B씨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기로 했다.
B씨는 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할 일이 아니라며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면 철저하게 조사를 받겠다고 맞섰다. 또 B씨가 속해 있는 공공연대노동조합에서는 A씨에게 부당노동행위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결국 A씨는 2019년 10월 7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학대) 혐의로 B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다음날 운영위원회를 열었다.
원장 A씨와 교사대표 1명, 학부모대표 4명, 지역인사위원 1명 등 총 7명의 운영위원 중 학부모대표 1명을 제외한 6명이 참석해 열린 운영위원회에서는 참석 운영위원 만장일치 의견으로 아동학대 의심의 소지가 있는 B씨가 사직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내용의 의결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A씨는 2019년 10월 18일 B씨를 ▲정당한 사유 없이 어린이집의 업무상 지시 명령 불복 및 협박 ▲어린이집에 크게 손해를 끼친 자, 끼치게 하려는 자 ▲어린이집의 명예를 크게 손상케 한 자 ▲아동에 대한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자 등 사유로 해고하고 내용증명 우편을 통해 해고 사실을 통보했다.
실제 B씨가 해고되기 전 일부 학부모들은 B씨가 보육교사로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기 불안하다며 A씨가 운영 중인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퇴소시켜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겼고, 입소를 대기하던 입소대기자가 입소대기를 취소하기도 했다.
2019년 10월 10일부터 11일까지 어린이집 학부모 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참가자의 85%에 해당하는 27명이 B씨에게 아이를 맡기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그런데 이 같은 어린이집 상황이나 학부모들의 의사와 노동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B씨는 2019년 12월 30일 부당해고를 주장하면서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경북지노위는 일부 징계사유를 인정하면서도 징계양정이 과중하다고 판단, B씨의 구제신청을 받아들였다.
A씨는 경북지노위의 판정에 불복,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2020년 6월 10일 중노위마저 A씨의 재심신청을 기각하자 결국 법원에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냈다.
한편 B씨를 수사한 경북경주경찰서는 2019년 10월 7일 B씨의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혐의 없음을 이유로 내사종결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A씨와 7명의 학부모들은 8명의 원아에 대한 B씨의 학대 정황이 담긴 증거들을 모아 2020년 4월 13일 다시 검찰에 B씨를 고발했다. 혐의는 아동복지시설종사자의 아동학대 혐의였다.
2020년 5월 19일 경북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이 경주경찰서장에게 회신한 '아동학대 사건 정보공유 회신서'에는 B씨가 한 아동의 식사를 지도하던 중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로 추정되는 물체를 다시 주워 아동의 식판 가에 놓거나 국과 밥, 반찬을 한꺼번에 섞은 뒤 떠먹이는 등 인권과 위생의 개념을 감안할 때 아동의 건강과 복지를 해친,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로 의심된다는 내용이 감겼다.
또 다른 아동의 경우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고 돌아다니자 B씨가 아동의 뒷목덜미를 잡은 채로 국에 밥과 잔반을 혼합해 숟가락으로 떠먹였는데, 이는 아동의 의사나 정서를 고려하지 않는 강압적 행동으로 볼 수 있고 아동이 공포감과 위협감을 느꼈을 수 있어 아동학대로 의심된다는 내용도 있었다.
결국 검찰은 2020년 12월 23일 고발사실 중 두 명의 아동에 대한 아동학대 혐의로 B씨를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은 B씨에게 아동학대에 대한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등 이유로 1심과 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아직 대법원 선고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처럼 형사재판에서는 B씨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부당해고 소송을 다룬 서울행정법원은 부당해고가 아니라며 중노위의 판정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먼저 B씨에 대한 징계사유 중 '학대행위'는 법적 판단을 요하는 규범적 개념으로 반드시 아동복지법상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신체적, 정서적 학대행위가 성립하는 경우만을 한정해 징계사유로 삼는 취지라고 볼 수 없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2019년 10월 1일자 CCTV 영상에 의하면 B씨는 원아들을 돌보는 모습에서 그다지 세심함과 따뜻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전반적으로 그저 업무에 치어 서둘러 원아들의 밥을 먹이고 낮잠을 재우는 등 사무적으로 원아들을 대하는 모습만 보이며, 그 과정에서 원아들을 함부로 거칠고 강압적으로 대하거나 또는 원아들을 돌보는데 있어 부주의한 행동을 하는 모습도 여러 차례 확인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한편 B씨의 위와 같은 아동학대 의심 정황이 있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고 B씨에 대해 수사가 개시되거나 아동학대로 공소제기가 되면서 B씨가 보육교사로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은 불안하다는 이유로 원아들 중 일부가 퇴소하거나 일부 입소대기자가 입소대기를 취소하는 등 실제로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했고, 향후 그와 같은 이유로 학부모들이 이 사건 어린이집 입소를 꺼리는 등으로 이 사건 어린이집의 원아모집이 어려워져 추가적인 손해 발생의 우려도 충분히 예상되며, 나아가 그 과정에서 이 사건 어린이집 내지 그 운영자인 원고(A씨)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심지어 참가인의 동료교사들도 참가인의 비위행위가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지적하면서 복직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B씨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A씨가 B씨와의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관계가 남아있다고 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이어 "위 인정사실 및 앞서 든 증거들과 변론 전체의 취지에 의해 알 수 있는 여러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의 경우 위와 같이 일부 인정되는 징계사유만으로도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참가인에게 책임 있는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므로, 이 사건 해고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징계권자에게 맡겨진 재량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