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의 신작 소설이다. 문학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거머쥔 그는 이번에도 역사 소설과 미스터리를 결합해 매력적이고 장대한 서사를 직조했다. 1901년 오스만 제국하의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에 페스트가 퍼지면서 혼란이 야기되고, 급기야 파견된 정통 기독교인이자 방역 전문가가 살해당한다는 이야기.
섬세한 영혼을 가진 몇몇 선장들은 호메로스가 『일리아스』에서 “분홍색 돌로 만든 초록의 다이아몬드”라고 표현한 멋진 모습이 수평선에 나타났을 때 민게르 풍경을 만끽하도록 승객들을 갑판으로 초대했고, 동양으로 가는 화가들은 폭풍을 머금은 검은 구름들을 추가해 이 낭만적인 풍경을 열정적으로 화폭에 옮겼다. <18쪽>
“파샤, 이 사람이 진짜 살인잡니까? 아니면 혹독한 심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백했을 가능성도 있습니까?”
“당신에게 보낸 전보만 아니라 나에게 온 칙령에서 우리 파디샤께서는 살인자를 즉시 색출하기를 무척 원한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신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
...
“파디샤께서는 이런 식으로 본코프스키의 살인범을 찾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폐하가 무엇을 원하시고 어떠한 방식을 원하시는지 마치 아는 바라도 있는 듯이 말씀하시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폐하는 셜록 홈스 이야기에서처럼 살인에 관한 세부 사항들을 조사하고 구타와 고문이 아닌 증거에 의거하여 본코프스키 파샤의 진짜 살인범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셜록 홈스가 누굽니까?” <223쪽>
무슬림들 사이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한 적대심은 때때로 오스만 관료, 총독, 군인을 향한 분노로 변했다. 섬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감정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지난 오십 년 동안 유럽인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선포된 모든 개혁 조치,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평등을 위해 반은 유럽의 압력으로 반은 진심으로 행해진 개선과 개혁이 진행된 후 섬이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유럽은 도움을 주기는커녕 섬을 섬사람들의 운명에 맡겼다고 생각했다. <368쪽>
페스트의 밤 | 오르한 파묵 지음 |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780쪽 | 1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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